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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아테네] 3. 펜싱 김희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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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에서는 쟤가 일을 낼 거유."

남자펜싱 국가대표 코치 김영호(34)가 지난해부터 이렇게 장담하는 선수가 있다. 여자 에페의 김희정(29.계룡시청)이다. 김영호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남자펜싱 플뢰레에서 한국 펜싱 사상 첫 금메달을 딴 사나이. 그가 최고의 여(女)검투사로 꼽는 김희정은 1m74cm.65㎏의 몸에 번개 같은 칼 솜씨를 가진 원더우먼이다.

5일 오후 태릉선수촌 개선관. 김희정이 20여명의 선수와 함께 훈련에 열중하고 있다. 펜싱의 생명은 무엇보다 칼끝의 예리함과 스피드다. 거기에 상대가 어떤 동작을 할 것인가를 순간적으로 예측하고 반사적으로 움직이는 민첩함이 더해져 승패를 가른다.

김영호조차 "너무 힘들어 경기 도중 기절한 적도 있다"고 할 만큼 극도로 감각적인 심신을 갖춰야 하는 이 '찰나의 승부'에서 김희정의 탁월한 정신력은 큰 무기다. 콩트르 아타크(역습).파라드(막고 찌르기)등 탄탄한 기본기도 강점이다.

매일 오전.오후 두시간씩 김희정은 지옥 훈련을 한다. 동료와의 실전 연습, 짚으로 된 허수아비를 상대로 한 스피드 훈련. 그리고 상대가 어떻게 나올 것인가를 상상하며 혼자 허공을 향해 칼을 뻗는 이미지 트레이닝. 이 모두가 '몇분의 1초'를 늘리기 위한 싸움이다.

"펜싱의 진짜 매력은 미묘한 심리 게임에 있어요. 상대를 이해하고 끊임없이 생각을 주고받다가 허점을 찾아 '탁' 찌르는 거죠."

고된 일과를 반복하면서 김희정은 이렇게 '칼싸움의 미학'을 터득하고 있다.

김희정은 대구 경복여중 2학년 때 본격적으로 칼을 잡았다. 하나뿐인 딸이 힘든 운동을 하는 게 안쓰러워 극구 반대하시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부터다.

"상대를 찌르면 내 쪽의 불이 켜지는 게 재미있어서 펜싱을 시작했어요."

5년 뒤 경북예고를 졸업하고 금산군청에 스카우트된 1995년 세계청소년선수권에서 우승하며 그는 가능성을 보였다. 하지만 이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며 부진의 세월을 보냈다.

"시드니 올림픽 예선전에서 호주 선수에게 본선 진출권을 빼앗긴 뒤 내 자신과의 싸움에서 졌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실감했어요."

각고의 노력 끝에 그는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 부활했다. 여자 에페 개인.단체전을 석권했고, 이어 지난해 세계 대학생들의 올림픽인 대구 유니버시아드에서도 우승했다(그는 계룡시청 소속이면서 지금 목원대 사회체육학과 4학년 재학 중이다).

"그런 경험이 노련함으로 나타나고 있어요. 거기에 담력까지 붙었으니 아테네 금메달은 충분히 노려볼 만합니다."여자 에페 조희제 코치의 말이다.

본선 티켓을 따려면 아직 넘어야 할 관문이 많다. 이달 중순부터 3월까지 이어지는 10여개 그랑프리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려야 한다. 하지만 김희정의 칼끝은 이미 고도(古都) 아테네를 겨누고 있다.

글=정영재,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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