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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 추락의 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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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빅2의 지지율 합계가 70%를 넘은 적이 있다. 한나라당 후보 경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인 올 초의 일이다. 2월 10~13일 중앙일보 조사에 따르면 이명박 후보 49.2%, 박근혜 후보 지지율은 21.6%였다. 더하면 70.8%. 당에 대한 지지도 역시 52.7%였다. 꿈의 지지율이었다. 한나라당은 흥분했다.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40%대 벽을 넘지 못하고 번번이 좌절했던 아픈 기억을 가졌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대세론이라고 할 만했다.

 가장 흥분한 사람들이 이명박·박근혜 두 경선 후보였던 것 같다. 한나라당 후보 자리만 따 내면 대통령 당선은 떼 논 당상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부터 양 캠프에서 비이성적인 행동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경선 룰을 놓고 험악하게 격돌해 당이 깨지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왔다. 과열 양상은 곳곳에서 나타났다. 당내에선 비상등이 켜졌지만 당사자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당직자 등 심판들이 옐로 카드를 꺼냈지만 무시했다. 오히려 자신들에게 불리한 경고에는 “심판이 특정 후보 측에 줄을 서고 있다”고 공격했다. 선거전은 죽기 아니면 살기식의 전쟁판으로 변질됐다.

 이런 와중에 무리수도 등장했다.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해 비선(秘線)이나 사조직이 나섰다. 경쟁자에 대한 뒷조사와 의혹 부풀리기식 폭로 회견이 이어졌다. 야당판 공작정치, 정보정치가 활개쳤다. 과열 경쟁은 급기야 외부세력을 안방에까지 끌어들였다. 검찰은 이 후보 일가의 주민등록초본을 불법으로 떼어 유출하는 데 박 후보 측 관계자가 개입했는지를 조사 중이다. 동시에 또 박 후보의 정수장학회·영남대 재단 관여에 문제는 없었는지, 이에 대한 비난 회견의 배후에 누가 작용했는지도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대운하 보고서 유출 건을 수사 중이다.

 마치 구한말 권력 다툼을 보는 듯 하다. 당시 대원군과 명성황후는 상대를 몰아내기 위해 청과 일본 등 외세를 끌어들였다. 청·일 양국은 이들을 이용해 분탕질하고 결국 조선을 망하게 만들었다. 한나라당이 자신의 운명을 검찰 등 외부 기관에 맡겨 놓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여전히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는 듯하다. 이기기 위해선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을 자세다.

 그러는 사이 지지율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7월 11일 조사에서 이·박 후보의 지지율 합계는 58.1%였다. 13%포인트에 가까운 지지를 날려보낸 꼴이다. 당 지지율도 43.8%로 떨어졌다.

 물론 검증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유권자에겐 후보를 선택하는 기준과 잣대를 제공해야 한다. 선거운동 자체가 바로 검증 과정이기도 하다.

 문제는 선수들이다. 빅2는 멋진 공격과 훌륭한 방어로 수준 높은 게임을 보여주는 데 실패했다. 두 사람은 날카로운 공격수의 기량도, 지혜로운 수비수의 면모도 보여 주지 못했다. 차명 부동산 의혹에 대해 이 후보는 “이명박 죽이기” “정치 공작”이라고만 했을 뿐 속시원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박 후보는 주민등록초본 부정 발급 사건에 대해 “어둠 속 비리를 들추기 위해서라도 결코 촛불을 훔치는 행동을 해선 안 된다”는 모호한 말로 핵심을 비껴 가려 했다.

 둘 다 솔직하지 못한 답변이다. 위상에 걸맞은 정치적 기량으로 매끄럽게 넘어가지도 못했다. 유권자들에게 감동을 주지도 못했다. 멋진 승부를 기대했던 이들은 오히려 수준 낮은 저질 공방에 등을 돌리고 있다. 더 멋진 승부가 없나 하고 주위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벌써부터 집권이라도 한 양 ‘공천 살생부’부터 만드는 측근들의 꼴불견도 이를 부채질하고 있다.

 한나라당 후보 경선(8월 19일)까지는 한 달이 남았다. 사생결단식 동반 추락을 계속할 것인지, 극적 반전으로 등돌린 관객을 다시 부를 것인지는 두 사람에게 달렸다. 서로 상대가 양보해야 한다고 고집하면 그 결과는 뻔하다. 

이정민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