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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해진 탁구단일팀의 기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한달 반 앞으로 다가온 제42회 외테보리세계탁구선수권대회 (5월11∼23일·스웨덴) 준비에 여넘이 없는 또일 이른 아침의 기흥탁구전용체육관.
이유성(대한항공감독) 여자대표팀 감독은 새벽 구보에 이은 체력훈련으로 비지땀을 쏟는 현정화(한국화장품) 등 여자선수들의 맹훈련을 지켜보면서도 마음 한구석 어딘가에 마치 커다란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물결치는 허전함에 몸을 떨어야 했다.
91년 3월25일.
이 날은 남북스포츠가 분단 45년만에 사상 처음 단일팀을 구성, 제41회 지바(천섭)세계탁구선수권대회가 열린 일본에서 역사적인 합동훈련에 돌입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코리아탁구단일팀의 여자팀 남측 코치로 출전, 세계대회 사상 유례없는 9연패 신화에 도전하던 철옹성의 중국을 꺾고 세계를 제패, 남북 7천만 겨레를 감격에 복받치게 했던 시상식장에서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적어도 그 순간만은 분단 45년의 골을 좁혀 진정 녹색테이블에서나마 작은 통일을 일궈냈다고 자부했었다.
45일간의 한솥밥 살림을 마치고 헤어지던 날, 『서로 편지하자』고 귀엣말을 속삭이며 손을 맞잡던 현정화와 이분희의 눈물겹던 모습.
여자팀 북측 코치로 나이가 열 살은 많아 형님처럼 따르던 조남풍지도원(코치)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연초만 해도 또 한번의 남북단알팀 구성에 큰 기대를 가졌었는데 이젠 이런 소망은 수포가 돼버린듯 착잡하기만 하다.
남측에서 보관중인 세계선수권 우승컵인 코르비용컵반환은 어찌 되는걸까. 단일팀 북측 에이스였던 김성희와 결혼한 이분회가 이번 대회에 나오는 것인지….
나온다면 『다시는 헤어져 싸우지 말자』고 굳게 약속했던 복식 파트너 정화와의 대결 또한 가능성이 높을텐데….
2년전 한많은 일본땅 지바에서 일궈냈던 한민족의 하나됨이 정녕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간 한낱 단순사건에 불과했는지 세계탁구선수권대회를 맞이하는 이유성감독의 눈가엔 어느덧 이슬이 맺히고 만다. <유상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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