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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면서 비비면 통한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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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왕>에서 왕이 세 딸에게 묻는다.
“날 얼마나 사랑하느냐?”
교활한 두 딸 고넬리와 리건은 그들의 사랑을 과장하지만 성실한 코델리아는 “자식으로서 효성을 다할 뿐”이라고 덤덤하게 대답한다. 이에 화가 난 리어왕은 코델리아를 추방한다. 연극이든 현실이든 사람들은 입에 발린 소리란 것을 뻔히 알면서도 아부를 좋아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듣고 싶어 하는 사실에 더 귀를 기울이게 마련이다.” 전 타임즈 편집국장겸 <아부의 기술(원제 : you’re too kind a brief history of flatter)>의 저자인 리차드 스탠걸의 말이다.

하지만 이런 아부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 하면 낭패 보기 십상이다. 아무리 좋은 것도 독이 될 수 있는 것처럼. 그렇다면 아부 타이밍으로는 언제가 가장 좋을까?
얼마 전 발표된 미국 오리건 건강과학대의 연구조사에 따르면 사람의 몸에는 일정한 리듬이 있는데, 일상적으로 오후 1시~2시까지가 상대방에 대한 경계심이 허물어지는 시간이라고 한다. 때문에 이 시간이 사과나 설득에 적합하다고 한다. 점심 식사 후, 상사나 동료와 함께 식당에서 회사로 걸어오는 동안, 혹은 점심 산책 시간이 아부하기에 가장 적합하다는 말이다. 특히 걷는 동안 생기는 여러 가지 신체적 변화가 이를 뒷받침한다. 서울백병원 정신의학과의 우종민 교수는 “걷는 동안 뇌 속에 증가하는 ‘베타엔돌핀’이라는 호르몬이 고통을 완화시키는 효능이 있어 우울증과 스트레스를 감소시킴과 동시에 기분을 좋게 해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물론, 타이밍만 맞는다고 아부가 무조건 효과가 있는 건 아니다. 아부는 ‘타이밍, 기술, 장소의 삼합’이 중요하다. 입에 발린 아부는 더 이상 아부가 아니다. 마케팅에도 차별화가 필요하듯, 아부에도 차별화가 필요하다.
모든 대화의 기본은 ‘듣기’다. 빌 클린턴은 국민이 질문할 때 마이크를 감싸 쥐고(말을 안 하겠다는 의지) 한쪽 귀를 질문자에게 돌리고 몸을 기울인다. 또 양미간을 모으며 그를 바라본다. 이처럼, 상사와 대화를 나눌 때도 그에 맞는 ‘듣기의 기술’이 필요하다. 일본의 심리학자 이토 아키라는 “고참 사원들은 ‘경험이 풍부한 내가 한수 위’라는 생각을 가지기 때문에 자존심에 상처가 될 만한 이야기나 질문을 던져서는 안 된다”고 충고한다. 그러면서 고참에게는 ‘한수 배우겠다’는 솔직한 태도로 듣는 것이 가장 좋다고 제안한다. 그런 다음 상사에게 최고의 아부 멘트를 날려주면 된다.

또 상사가 여성일 때는 ‘여성형 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여성과의 테크닉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공감 테크닉’을 꼽았다. 대화 중 남성들은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인 “네, 맞아요”, “정말 그렇던데요”, “어, 저도 그런데요”처럼 최대한 동의의 표현을 써야 한다. 타이밍과 기술을 익혔으면 이제 장소를 둘러볼 차례다. 타이밍과 기술이 준비됐다면 장소는 의외로 쉽게 풀린다. 회사 안이나 음식점처럼 밀폐되고 답답한 공간보다는 탁 트인 장소를 걸으면, 주위의 보이는 사물들 차체가 대화를 부드럽게 하는 훌륭한 배경이 된다.

손희성 인턴기자 hssohn@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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