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풍개혁… 사회전반 뒤흔들어 김 대통령 취임 한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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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군·안기부 등 “깜짝”개편… 「성역」 제거/실명제 불투명… 「신경제」 아직은 먼길
23일 밤 시내 한정식집. 민자당의원 몇사람이 상기된 목소리로 얘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단순히 공직자들 재산신고하라는게 아니야. 이건 분명히 정치판을 갈아버리겠다는 거라구. 총칼없는 혁명이야,혁명. 무혈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거라구….』 『김영삼후보를 찍었던 사람들은 울상이고 김대중후보를 밀었던 이들이 박수치고 있다는 말도있어.』
『너무 빨리 달리는 것같아. 역사상 수많은 개혁이 있었잖아. 서둘러서 되는게 없는데…. 옐친을 봐.』
24일 새벽 서소문근처를 달리는 S교통 택시안.
『뭐 대충 보면 대통령이 잘하고 있는것 같아요. 좀더 세게 다잡아야죠. 의원들 재산공개 그게 뭡니까. 숨길것 다 숨기고…. 웬 땅은 그렇게 많은지…. 대통령이 지금까지와 똑같이 얼마나 오래 갈지….』
24일 오전 청와대. 이경재공보수석실.
『김 대통령은 취임 1개월동안 국민에게 약속한 변화와 개혁을 빠른 속도로 실천에 옮기고 있습니다. 의표를 찌른 예리하고 대담한 조치는 국민사이에 폭넓은 공감대를 만들고 있습니다.』
김영삼대통령의 취임 한달에 대한 소감은 이렇게 저마다 다르다.
지난 한달동안 우리사회는 김 대통령이 휘몰아친 개혁 장풍에 몇년은 후딱 지나간 느낌이다. 파격적인 인사,세상을 깜짝 놀라게한 권력 개편,회오리를 부르고 있는 공직자들의 재산공개 등….
대학교수들은 『사회의 가치관·인식구조·계급별 재산관계 등에 변화가 시작됐다』는 진단들을 하고 있다.
감정이 좀더 앞서는 정치권인사들은 『질풍노도같다』고 말한다.
김 대통령이 끌고가는 변화는 크게 몇 줄기로 나눌수 있다.
첫째는 정치·사회풍토의 정화다. 김 대통령은 『정치자금을 1전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같은 식구」인 민자당에도 자금을 주지 않겠다고 했다. 그에따라 당은 몸무게를 거의 반으로 줄였다.
김 대통령은 먼저 시범적으로 재산을 공개했다. 그 조치가 일파만파를 가져올 것을 솔직히 눈치챈 사람은 별로 많지 않았다. 장관·청와대수석비서관에 이어 국회의원들이 안방 장롱을 열자 우리사회는 일거에 회오리에 싸였다.
둘째,과감한 인사다. 김 대통령은 과거 군통치의 뿌리였던 하나회에 바로 비수를 들이댔다. 인가부 지휘부도 예상밖의 문민들로 물갈이했다. 청와대에 재야출신을 끌어들였고 내각에도 실험성 인사가 단행됐다.
셋째,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개혁조치다. 김 대통령은 안기부·보안사 등 정보기관을 제 궤도로 돌리기 위해 기구·기능을 고쳤다.
감사원도 정상화작업을 진행중이다.
넷째,대통령 스스로 집무스타일을 파격적으로 바꿨다. 김 대통령은 권위주의적인 냄새를 없애고 자신이 여러 분야에서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 대통령은 주변부터 조금씩 조금씩 바꾸어가고 있다. 국수·설렁탕 등으로 식단을 간소화하고 골프를 치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전임자들이 애용하던 청와대내 골프연습장도 없앴다.
청와대주변도로·인왕산을 개방하고 인가·지방청와대를 없앴다. 지방에 내려가도 기관장들이 도경계까지 영접나오는 일이 없도록 했다.
김 대통령의 개혁조치는 대부분 여론의 지지를 얻고 있다. 그러나 몇가지 부작용과 시행착오를 예비하고 있는 대목도 있다. 몇몇 부분은 성과를 얻자면 지금보다 수십배의 각고가 필요하다.
우선 인사실수도 적지 않았다. 일부 수석비서관·장관은 부적격한 인물이어서 서둘러 새인물로 바꿔야했다. 이로인해 『김 대통령은 치밀하지 못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리고 경제는 시험대에 올라있다. 김 대통령은 「신경제」를 내놓았지만 성공 여부는 지극히 불투명하다. 재산공개나 사정작업같은 개혁속도가 너무 빨라 관계·경제계가 굳어 있다는 얘기도 만만치않다. 금융실명제도 왔다갔다 하고있다.
김 대통령은 고통분담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아직 충분히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공무원노조는 임금동결에 반발하고 있고 노동자들도 시큰둥한 표정이다.
이같은 문제점을 김 대통령이 이행전략을 분명히 갖고 하나하나 풀어갈지 지켜보는 눈들이 날카롭다.<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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