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찜찜한」 옐친 지지/러 사태 대처에 고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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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무정부상태땐 치를 대가 너무 커/“개인보다 개혁지원” 유보론 대두
미국이 러시아 문제를 둘러싸고 공식적으로는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에 대한 절대적 지지를 계속 선언하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조심스런 견해도 대두되고 있다.
옐친이 비상통치선언을 발표한 직후 백악관은 즉각적인 지지를 발표했으며 워런 크리스토퍼국무장관도 22일 시카고 외교평의회 연설에서 옐친에 대해 『러시아 국민들로부터 유일하게 지지를 받고있는 인물』이라며 적극 지지했다.
빌 클린턴 미대통령은 이미 옐친을 도와주기 위해 다음달 3일 캐나다 밴쿠버에서 미­러시아 정상회담을 마련하고 있으며 서방선진 7개국(G7) 국가에 대해서도 옐친을 적극 도와줄 것을 강조하고 있다.
○G7에도 지원 촉구
미국의 이같은 옐친 지지는 어떻게 보면 불가피한 선택일수 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크리스토퍼가 연설에서도 밝혔듯이 러시아는 미국의 국가이익에 비추어 볼때 없어서는 안될 나라라는 점이다.
그는 『러시아가 무정부상태나 독재국가로 전락할 경우 미국이 지불해야할 대가는 끔찍할 것』이라고 말하고 그럴 경우 핵위협의 대두,미 국방예산의 증가,국제적 불안정과 민주화 추세의 반동 등 미 국민 개개인의 이해와 직결된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같은 견해는 얼마전 러시아를 방문한뒤 돌아와 뉴욕 타임스지 기고를 통해 옐친을 도와주는 것이 미국의 국가이익에 맞는다는 리처드 닉슨전대통령의 의견과 같은 것이다.
닉슨은 옐친체제의 붕괴는 곧 보수반동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러한 반동세력이 등장할 경우 미국은 국내경제 회복 등 우선적 과제를 모두 뒤로 물릴수 밖에 없는 어려움에 직면한다는 지적과 함께 클린턴이 직접 나서 러시아 부채상환 연기 등 국제적 지원을 해야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이같이 옐친을 적극 밀어야 한다는 논리가 미국내에서 일치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헨리 키신저 전국무장관 같은 사람은 옐친 개인에 대한 지지에 대해 적극 반대하고 있다.
○대안없어 더 어려워
그는 ABC방송 대담에 출연해 러시아 사태를 분석하면서 이번 사태가 끝나면 옐친이 잡든 다른 세력이 잡든 러시아는 칠레와 같은 독재체제 또는 반독재체제로 갈수 밖에 없다는 진단을 하고 있다.
즉 반동세력이 권력을 잡을 경우는 말할 것 없고 옐친이 다시 집권할 경우도 러시아 민족주의를 내세워 준독재체제로 갈 위험이 높다는 것이다.
그는 이미 독일이 9백억달러이상을 러시아 지원에 썼으나 별다른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있듯 한계가 있는 것이므로 사태를 지켜보아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즈비그뉴 브렌진스키 전국무장관은 이번 사태가 2년전 보다 더욱 어려운 처지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2년전 쿠데타때 미국으로서는 같은 개혁지향적인 미하일 고르바초프 구소련대통령과 옐친이라는 두사람을 놓고 고민했는데 이번은 다른 대안없이 옐친만을 밀수 밖에 없는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만일 미국이 옐친 개인에 대해 이같은 일방적 지지를 했다가 잘못될 경우 미국은 막다른 골목으로 갈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점때문에 옐친을 밀어주려면 좀더 확실하게 밀어주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로버트 돌 공화당 상원원내총무의 경우 미­러시아 정상회담을 밴쿠버에서 열 것이 아니라 아예 모스크바에서 열어 옐친을 내놓고 지지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으며 백악관도 러시아의 요청이 있을 경우 장소를 변경할 의사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미국은 첫 성명에서도 나왔듯이 무엇보다 러시아의 민주화와 시장경제를 지지한다는 주장을 앞세우고 있다.
그런 다음 이러한 노선을 지켜갈 인물은 옐친밖에 없으니 옐친을 지지한다는 논리다.
이는 반동세력에 미국의 목표는 민주화와 자유경제라는 점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것이며 옐친에 대해서도 독재체제로 돌아가서는 안된다는 경고일수 있는 것이다.
○더악화땐 태도표명
옐친 개인에 대한 지지의 위험성을 의식해서인지 조지스테파노풀로스 백악관 대변인은 22일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옐친과 그밖의 다른 개혁가들을 지지하며 옐친을 지지하는 것이 러시아에 다른 개혁가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개혁의 지도자이자 하나의 상징이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즉 자유경제와 민주화를 지지하는한 러시아 다른 개혁가와도 손을 잡을수 있다는 유보인 것이다.
앞으로 러시아의 사태가 더 악화되어 간다면 미국의 유보는 좀더 명백한 쪽으로 나올수 밖에 없을 것이다.【워싱턴=문창극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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