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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탄세습 겨냥한 「북핵책략」/폴란드 PAP 북경특파원 분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탈퇴」로 고립… 외부간섭 차단속셈/「팀」 훈련 등 외환핑계로 내부 결속
홍콩에서 발행되는 시사주간지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는 18일자 최신호에서 폴란드 PAP통신의 북경주재 특파원 크리스토프 다레비츠가 평양발로 보도한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선언과 관련해 북한의 최신 동향분석기사를 게재했다. 북한 취재허가를 갖고 있는 몇 안되는 세계 각국 언론인중 한명인 다레비츠기자는 북한이 NPT에서 탈퇴하기로 결정한 것은 김일성­김정일 부자권력세습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내부혼란에 대비해 외부세계와의 교류를 축소시키려는 북한의 정치정세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음은 다레비츠 기자의 분석기사 전문이다.
과거의 경우와 마차가지로 서방분석가들은 이번에도 북한 지도부의 속마음을 잘못 읽고 있는 느낌이다. 서방세계는 북한이 국제적 고립을 원치 않기 때문에 곧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요구에 협력할 것이라는 추정에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복잡한 북한정치에 정통한 러시아 전문가들을 포함한 평양에 주재하는 관측통들은 정반대로 생각한다.
이들 전문가들은 북한이 김일성이 아들 김정일에게 권력을 이양하는 시기가 갖는 위험성을 고려해 외부세계로부터 가능한한 최대로 고립되기를 스스로 원하고 있다고 말한다.
새로운 고립정책은 평양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생활에 이미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평양주재 외교관들은 허가없이 평양밖으로 여행하는 것이 금지되고 있으며 과거 아무런 제한이 없던 평양 인근 남포항 방문도 제한되고 있다.
북한당국은 또 외국인들에게 구독을 허용한 북한 발행신문을 종전의 여섯가지에서 최근 평양일보·노동신문 두가지로 축소했다. 당국은 이같은 조치에 대해 다른 신문들이 더이상 발행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북한 TV의 저녁뉴스시간에는 여전히 이들 신문을 인용하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북한 주민들이 외국인들과 접촉하는 것도 크게 제한되고 있다. 러시아 타스통신은 최근 북한당국이 외국 대학생과 알고 지내던 한 여성에게 강제노동수용소에서 4년동안 「재교육」을 받도록 선고한 사실을 폭로했다. 대부분의 관측통들은 외국인들과 북한 주민간 접촉을 제한하는 조치가 이미 북한의 실질적 지도자인 김정일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김일성은 김정일에게 조언하는 역할과 의전적 행사에만 참석하는 등 제한된 활동만 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이들 부자간 권력승계를 공식화하는 과정에서 김정일을 예측하기 어려운 인물로 위험시하고 있는 남한이 북한에 혼란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김부자는 중국이 김정일에게 냉담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일부 중국군 고위지도자들은 김일성사후에 김정일이 쿠데타에 의해 축출되는 것을 최선으로 생각한다. 이같은 사태를 사전에 막기 위해 북한의 최고 지도층은 권력이양기에 국경봉쇄를 바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평양 관측통들의 분석이 옳다면 한미팀스피리트훈련 재개와 국제제재위협 등 강화되고 있는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력은 북한의 이익에 호재로 작용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결정적인 권력이양기에 자칫 내부 파멸의 원인이 될지도 모르는 외부영향을 차단하기 위해 스스로 은둔적 고립을 원하고 있다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이같은 국제정세를 이용,북한정권은 「외부의 적」을 지목해 앞세움으로써 인민의 지지를 결집할 수 있게된 사실을 내심 반가워 할지 모른다.
북한이 평양의 외국인 커뮤니티를 철저히 통제하고 있어 현재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꿰뚫기 지극히 어렵긴 하지만 일부 관측통들은 김정일이 정권을 순조롭게 이양받을 수 있을지 여부는 북한군에 달렸다고 믿고 있다. 김일성이 권위의 바탕을 「인민대중」에의 호소에 두었던 것과는 달리 김정일은 노동자대표나 비군사단체에 대한 「현장지도」 활동을 포기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김정일은 그대신 군장교들과 어울리거나 훈장수여 등 군 포상식에 참석하는 비중을 크게 두고 있다.
김정일은 공식적으로는 인민군 최고사령관 직위를 갖고 있지만 지난 62년 7주일간 군사훈련을 받은 것 외에는 군사적 경험이나 군배경이 전혀 없다. 그러나 평양의 관측통들은 김정일이 정치적 이유로 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다시말해 북한사회에서 북한군의 역할이 외침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것보다 사회질서유지쪽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평양의 관측통들은 김정일이 권력을 승계받은 후 군의 지지를 받을 경우 적어도 10년은 권좌를 지킬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대가를 지불해야만 할지도 모른다. 북한의 비밀 핵개발계획은 북한 정권이 한국에 대한 군사적 억지능력을 적은 비용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효과만 주는 것이 아니다. 이 핵개발 계획은 군현대화를 추진하는데 소요되는 재원이 바닥난 시점에서 북한군의 사기 진작에도 상당한 기여를 하게될지도 모른다. 이렇게 볼때 북한이 현재 전개하고 있는 핵책략은 북한 내부정치 방정식을 푸는데 있어 핵심요소인 셈이다.<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본사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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