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적인 핵 정책 수립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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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지금이라도 우리는 북한의 핵 확산금지 조약( N P T )탈퇴에 대 해 보다 정확하고 근본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북한의 이번 조치는 단순하고 즉흥적인 사건이 아니다. 고도의 술책과 계략이 내포된 복합적 사건으로 이해해야 한다.
북한은 최근 심각한 경제사정과 미확인 시민봉기 등 국내에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이번 조치는 김일성-김정일 체제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선동전략의 일환일 수 있다. 문민정부 수립 후 건비 정책이 이인모씨 송환등 전향적·적극적·유화적으로 전환함에 따라 북한 지도부가수세에 몰린 데 대한 대응책으로 볼 수도 있다.
한편으론 북한의 핵무기 생산이 이미 완성되었거나 핵무기 제조의 마지막 공정인 기폭장치 개발과정에 돌입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치가 이를 위한 시간 벌기 전술로도 풀이된다.
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 노리는 것이 있을 수도 있다. 최근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 증진을 위해 노력해왔으나 별 성과를 얻지 못했다. 그런데 마침 한미간에는 무역마찰·우루과이라운드 등으로 껄끄러운 상태에 놓여있다. 혹시 북한이 이런 분위기를 이용해 미국의 대한발언권을 강화시켜주면서 반대급부로 미-북 한관계를 개선하려는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비록 이런 의도가 빗나가도 북한은 최소한 외교적 위상을 한층 제고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또 북한은 김영삼 정부의군내 사조직과 일부 기득권 층에 대한 과감한 수술 단행으로 기득권 층의 격렬한 반발을 예상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반발이 미미해 오히려 개혁조치가 성공하는 것으로 보이자 이런 조치로 전쟁분위기를 조성, 군의 위상을 강화시켜 30년 동안 우리 나라를 끌고 온 군의 사조직과 일부 TK세력 등 기득권 층과 현정부사이의 권력투쟁을 유도하기 위한 책략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면 우리의 대처는 어떠해야 하는가.
첫째, 불행하게도 우리 나라는「핵」에 관한 한 아무런 권한과 능력을 갖지 못했다. 이 때문에 우리의 우방인 미국과 일본, 그리고 북방외교의 성과로 얻은 중국과 러시아를 통한최대한의 외교적 교섭을 가해야 한다.『엔테베식 기습공격으로 핵 시설을 파괴하면 된다』는 극우파적 사고방식이나『북한이 핵을 보유하는 것은 통일이후 우리가 핵을 갖는 것』이라는 낭만적이고 극좌파 적인 생각은 모두 경솔하다.
둘째, NPT탈퇴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의도했던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경우 북한은 소규모의 국지전을 도발할지도 모른다. 이런 경우라 해도 국지전에 전면적으로 대응하는 우를 범하면 안 된다.
셋째, 대한민국의 「핵무력증」에 대해서는 미국도 일단의 책임이 있다. 현정부는 빠른 시간 내 미국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의 핵 개발이 완전히 중단 될 때까지 95년으로 예정된 3만7천4백 여명의 미군철수를 중지시켜야한다.
넷째, 이 문제를 해결하면서 북한이나 미국에 지나친 양보를 하면 안 된다.
이번 사태를 기화로 한국 측이 상당부분 이익을 상실하는 내용의 새로운 한-미-북한의 삼각관계가 형성될 우려가 높다.
다섯째, 이제라도 대한민국의 독자적인 핵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우리 경제력의 10분의1 수준밖에 안되는 북한은 구소련과 중국의 견제 속에서도 핵무기의 완성단계에 도달했다. 그런데 우리정부는 핵을 보유하고 있지 못하면서 비핵정책도 제대로 펼치지 못했다. 비핵정책의 핵심인 핵 농축·재처리시설 보유까지 포기했기 때문이다.
북한이 NPT탈퇴를 철회하고 IAEA사찰을 수용하는 등 핵무기 개발을 전면 중단할 의지가 확인되면 한반도 비핵화정책을 그대로 유지해나가야 하지만 북한이 핵 개발을 그대로 진행하면 우리도 플루토늄 확보 등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한다. 어떤 정책도 안보의 상위개념일 수는 없다. 통일을 바라는 마음이야 간절하지만「대한민국」을 담보로 통일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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