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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늑대론」(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김영삼대통령은 16일 『북한이 금방 전쟁이 일어날듯 야단이지만 특기할만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선언이 있은 직후 뭔가 불길한 공기가 감돌고 있을 때라 대통령의 그런 말은 우선 안도감을 갖게한다. 워싱턴의 미 국방부 주변에서도 비슷한 논평이 나오고 있으니 북쪽에서 들려오는 전쟁히스테리가 당장은 어떤 행동으로 나타나지는 않을 모양이다.
그렇다고 NPT를 탈퇴한 북한의 행동이 주는 충격과 앞으로 예상되는 위기가 덜어지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다만 북한의 제네바 주재 대사가 말하듯 『전면전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는 선언이 그대로 현실로 나타나고 있지 않다는 짐작이 가능하다는 얘기일 뿐이다.
이 정도의 사실확인만으로도 대단한 변화다. 5·16군사혁명 이래 최근까지 남북한간에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정부쪽에선 으레 국민들이 듣고 벌벌 떨게 만드는 말만 해왔다. 한술 더떠 북측 위협을 별것 아닌 것으로 평가하는 외신보도는 신문에 내지 못하도록 압력을 넣기도 했었다.
가장 두드러진 예로 이른바 북의 금강산댐 건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삼국지』에서 흔히 써먹던 수공이 이때와선 엄청나게 불어나 63빌딩이 물에 잠기게 된다고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 당시 누가 감히 그건 상식적으로도 말이 안되는 소리라고 할 수 있었던가.
상대가 워낙 6·25를 일으키고 청와대습격,아웅산테러,KAL기 폭파 등을 자행한 북한이니 그들의 위협은 크게 말할수록 좋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국민의 정부에 대한 신뢰가 흠을 입는다는데 있다.
북으로부터 심각한 위협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가리지 않고 「늑대가 나온다」고 국민을 벌벌 떨게 만들면 결국 그런 선전술은 약효가 떨어지고 만다. 그렇게 되면 정말 안보상 중대한 취약점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이번 사태를 극복함에 있어 정부는 북한이 NPT탈퇴를 계기로 우리 안보에 어떤 위협이 되고 있는지를 있는 그대로 정확히 알려 국민의 지지를 확보하는 새 전통을 마련했으면 한다.<장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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