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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사 출제유형 밝혀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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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서울대·연세대가 94년도 대학별 고사의 출제경향을 발표했다. 서울대는 출제의 방향만을 설명했고 연세대는 문제의 유형을 발표했다. 서울대가 기본 방향만을 제시한데 비해 연세대는 백문이불여일견이듯 문제 모델을 제시했다. 어느쪽이 효과적인 것인지는 너무도 분명하다.
94년에 실시하는 새 대입제도는 대학 수학능력시험에 대학별 고사까지 겹쳐 우선 제도 자체가 기존 제도보다 복잡하다. 여기에 수학능력시험은 종래의 사지선다형 객관식 문제를 지양하고 사고력·창의력·비판력을 요구하는 영역별 고사라는 낯선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이미 여섯차례의 모의고사를 보았지만 교사나 학생이 아직도 시험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서울대가 발표한 본고사 출제방향 또는 모호하기 짝이 없어 또하나의 혼란을 보태고 있다. 예컨대 과학시험의 출제경향을 「단순지식을 묻는 기계적 암기문제보다는 사고·탐구능력을 중시하는 문제를 출제하고…」 하는 식이다. 너무 포괄적이고 원칙적인 이야기여서 학교현장에서는 출제경향을 듣고서도 어떻게 학생을 지도해야할지 막연하다는 것이다.
물론 대학의 대학이라할 서울대가 어떻게 시시콜콜 문제를 예시하고 이런저런 방향을 그처럼 구체적으로 제시하느냐고 할지 모른다. 국가가 시행하는 평가시험이지만 대학별고사는 대학의 자율에 의한 선발시험이라는 점에서 대학이 고자세를 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의 새 제도 도입은 한 대학의 출제경향에 국한되는 작은 일이 아니다. 우리교육의 전반적인 개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한다. 이번 제도가 새 대입제도로 정착하지 못한다면 우리 교육의 개혁방향은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고 암기위주의 낡은 교육을 개선할 기회마저 영원히 잃게 된다.
수학능력시험의 출제와 운용이 잘 이뤄져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면 사실 대학별 고사란 옥상옥의 불필요한 존재가 될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대학별 고사를 보겠다는 방침을 정했다면 그에 상응하는 자세한 안내와 문제모델을 예시하는건 대학의 최소한 서비스일뿐더러 이미 대학이 약속한 사항이다.
여섯차례의 수학능력시험이 아직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걸 볼때 사고력과 창의력을 중시할 대학별 고사의 출제경향을 알려주려면 적어도 2∼3회는 문제모델이 예시되어야 한다. 주관식 문제란 출제도 어렵지만 채점 또한 매우 어렵다. 때문에 대학별 고사의 유형별 모의 시험을 통해 대학도 시험관리의 예행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서울대가 빠른 시일내에 출제 유형을 공개함으로써 새 제도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는 것이 곧 교육개혁을 위한 길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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