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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207 - 휘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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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면

새해가 되거나 봄이 오면 저명 인사들이 좋은 뜻의 글귀를 써서 지인들에게 보내곤 한다. '신춘(新春) 휘호'라는 말도 많이 쓰이고, 일부에서는 '휘호 대회'가 열리기도 한다.

'휘호(揮毫)'는 붓을 휘두른다는 뜻으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선생님은 정성껏 난(蘭)을 휘호하여 제자들에게 나눠 주었다" "한 스님이 '자비무적(慈悲無敵)'을 휘호하고 있다"처럼 쓰인다.

그런데 이 '휘호'는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행위'뿐만 아니라 아래의 예처럼 유명 인사들이 직접 쓴 '글씨'나 그린 '그림', 즉 작품 자체를 가리키는 말로도 상당히 많이 쓰인다.

"얼마 전만 해도 신년이 되면 대통령의 휘호가 신문 지면을 곧잘 장식하곤 했다.…유력 인사들은 가문의 영예(?)를 드높이기 위해 대통령의 휘호를 구하러 백방으로 뛰어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족패천하(足覇天下)'. 이 말은 서윤복 선수가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했을 때 김구 선생이 써준 휘호로 '발로 천하를 제패한다'는 뜻이다."

"경찰청 현관엔 '호국경찰(護國警察)'이라는 휘호가 걸려 있다."

대표적인 국어대사전들이 '휘호'의 뜻풀이에 '행위'만 설명해 놓은 채 '작품' 자체의 뜻은 놓치고 있다. 사전이 언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마땅히 이러한 뜻풀이가 사전에 반영돼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2004년은 국운(國運)이 더욱 융성하고 온 국민이 편안하게 희망을 키워갈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최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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