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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당선운동인가…예민해진 정치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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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4월 17대 총선을 앞두고 일부 시민운동단체가 '당선운동'을 벌이기로 한데 대해 정치권이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시민단체들이 '국민후보'를 선택해 집중적인 지지 운동을 벌일 경우 16대 총선 때의 '낙선운동' 처럼 선거 판세에 적지않은 영향을 줄 것이란 판단에서다. 특히 야권은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달 노사모가 개최한 대선 1주년 기념행사에서 '시민혁명' 발언을 한 뒤 곧바로 당선운동 움직임이 일어난 것을 놓고 '정권과 코드 맞추기'라며 공세에 펴고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아전인수격 해석'이라며 자신들과 무관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번엔 '당선운동'=강만길 상지대 총장, 최열 환경운동연합 대표, 양길승 녹색병원장,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 등 시민단체 관계자 및 학계 인사 1백여명은 오는 1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2004년 총선 물갈이 국민연대'(가칭)를 출범한다. 물갈이 연대는 3월 30일 후보 등록 마감 후 출마자 명단이 확정되면 이중 각종 부패사건 연루 여부, 선거법 위반 여부, 의정활동능력 및 개혁성 등을 기준으로 '국민후보'를 확정, 당선운동을 벌이기로 했다. 이를 위해 선거구별로 온라인 사이트 '물갈이닷컴'(mulgari.com)을 분양하고, 오프라인에서도 각 선거구 당 1백여명 규모의 유권자위원회를 구성해 전국적으로 3만여명을 모집할 계획이다.

여기에 일부 시민단체들은 낙선운동도 병행할 뜻을 밝혀 정계를 더욱 긴장하게 만들고 있다. 전국농민연대가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에 찬성하는 국회의원들에 대해 낙선운동을 벌이겠다고 다짐했고, 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당선운동에 초점을 맞추되 주 5일제 도입 등과 관련해서는 낙선운동도 함께 벌일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인권단체와 환경단체, 여성단체들도 이라크 파병 동의안 등 관련 정책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입장을 따져 4월 총선에 대응키로 했다.

2000년 총선 때는 시민단체들이 '총선시민연대'를 결성해 낙선운동을 펼친 결과, 대상자로 지목된 89명 중 68%에 달하는 58명이 실제로 낙선된 바 있다.

◇'3당3색' 정치권 반응=4년 전 낙선운동의 최대 피해자라고 여기는 한나라당은 이번 당선운동도 위법성이 크다며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무엇보다 한나라당은 이번 당선운동에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주축이 된 정치개혁시민단체인 '국민의 힘' 등이 가세, 결국 '반(反)한나라당 연대'가 될 것인지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최병렬(崔秉烈) 대표는 4일 기자간담회에서 "당선운동은 낙선운동과 동전의 앞뒷면"이라면서 "법을 뛰어넘어 개입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고, 공권력이 명확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진(朴振) 대변인도 "당선운동의 주도세력은 지난 16대 총선에서 낙선운동을 펼쳤던 인사들"이라며 "그들이 '시민'의 이름을 도용해 정권과 코드를 맞추고 특정세력을 위한 불법선거운동을 자행한다면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주당은 다소 우려하는 분위기다. 시민단체가 깨끗한 정치를 위해 나서는 취지에 대해서는 공감을 나타내면서도 합법적인 법의 테두리 내에서 활동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강운태(姜雲太) 사무총장은 "시민단체 이름으로 특정인을 지원하는 것은 선거법에 저촉될 가능성이 크므로 개인적으로 선거운동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종필(柳鍾珌) 대변인도 "법의 테두리 내에서 시민단체가 정치개혁과 정치인개혁에 관심을 갖고 행동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라며 "그러나 盧대통령과 코드를 맞춘 가운데에 국민을 오도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며 후보 선택의 궁극적인 판단은 유권자에게 맡기는 것이 올바른 자세"라고 지적했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부패한 후보를 가려내 깨끗한 정치를 이루려는 시민사회단체의 결단"이라며 환영했다. 정동채(鄭東采) 홍보위원장은 구두논평을 통해 "적법성 여부를 떠나 당연한 국민된 권리를 주장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이 나라 정치에 대해 국민들이 들고 일어서지 않으면 부패척결이 안된다는 충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한편 청와대의 유인태(柳寅泰) 정무수석은 5일 '청와대와 시민단체간 교감설'에 대해 "교감은 무슨 교감이 있느냐. 교감은 없다"고 일축하면서, "시민단체들이 알아서 하는데 청와대가 무엇을 언급할 필요가 있느냐"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낙선·당선운동, 어디까지 위법인가=중앙선거관리위원회 측은 향우회.동창회.종친회나 후보자측에서 결성한 단체 등을 제외한 노동단체.시민단체 등은 선거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방법으로만 하지 않는다면 당선운동도 무방하다는 입장이다. 즉 당선운동 자체가 금지되는 게 아니라 '방법'의 문제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후보에 대한 정확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 객관적 사실을 언론기관에 제공하거나 인터넷 등에 게시해 두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집회를 개최하거나 거리행진, 현수막 게시, 인쇄물 배부, 신문 및 방송광고, 표지판의 휴대, 확성장치를 이용한 거리 연설이나 서명운동은 선거법상 금지된다. 물갈이 국민연대 측도 지난 총선 때 낙선운동이 문제가 된 것은 현수막 게시나 가두집회 등의 방법을 동원했기 때문이라며 이번에는 합법적인 방법으로 추진하기 위해 법률적인 검토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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