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출신 기업인들 「참여속 개혁」(신명나는 사회:1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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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화염병대신 카폰들고 상담에 열중
낮엔 화염병대신 카폰을 들고 거래처를 누비고,밤에는 대자보대신 회계장부를 놓고 씨름한다.<관계기사 11면>
화려한 학생운동 경력을 뒤로 하고 작으나마 기업체를 설립,우리나라 산업의 한 부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운동권출신 기업인들이 늘고 있다.
빈약한 자본에도 불구,성실하고 추진력있는 기업경영으로 상당수가 제조·유통·무역등 우리나라 산업의 곳곳에 어엿하게 포진하기 시작했다.
컴퓨터나 사무기기 유통분야의 경우는 벌써부터 이들 운동권출신 기업들이 좌지우지할 정도다.
일부에선 정치나 사회분야라면 몰라도 기업인으로의 변신은 왠지 걸맞지 않는다고 할지 모른다. 특히 80년대초부터 기성엘리트계층에 체제개혁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판단,새로이 등장시킨 「민중」이란 단어와 비교해 볼 땐 더욱 어울리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그들은 기업인을 「국가독점자본주의」로 규정한 우리사회의 체제아래서 민중을 착취하는 대표적 자본가라고 주장하지 않았던가』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같은 생각때문에 운동권내부에서도 기업으로의 진출은 기피대상이 되었고 기성사회도 운동권출신이라면 취직기회조차 박탈하면서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되는 것을 원천봉쇄해왔다.
그러나 운동권출신 기업인들은 이처럼 척박한 대내외적 환경아래서도 뿌리를 내렸다. 그리고 그들이 기업인으로 변신하게된 우여곡절이나 갈등에 앞서 기존기업들과는 의식부터 다른 새로운 경영방식으로 산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들 기업들에는 리베이트·뇌물·수수료따위의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세상물정」의 필수요소가 없다. 유통업을 한다고 생산자와 소비자 중간에서 장난을 치는 법도 없다. 그럴 돈도 없는 상황이지만 투기나 재테크는 더욱 사절이다.
대신 소비자위주의 박리다매원칙이 있고 업계의 잘못된 관행이나 질서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다. 특히 유럽의 청교도들이 근대자본주의를 일으키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작용했던,하지만 오늘날 기업들에선 거의 실천되지 않고 있는 근면·절약·성실이 뒷받침됐다.
그결과 「기업이 어디 학교냐」는 주위의 실패예상을 뒤엎고 우리사회의 신명을 위한 새로운 성공사례를 남기고 있다.<이효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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