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개혁 반발 수구책동/심증 있으나 물증 없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청와대 “배경 수상”긴장… 당혹…/고급정보·전문적 문구 “프로”냄새 뚜렷/추적 조사­설득 진무… 강온 양면책 강구/김 대통령 “꽃샘추위에 언론 이용당하지 말길”
김영삼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은 최근의 인사파문이 수구세력의 조직적 반격 또는 음모에 의해 증폭되고 있다고 보고있다. 흠집내기 대상인물에 대한 정보가 세밀한 곳까지 정확해 국가기밀을 다룰만한 수구세력이 아니고는 그런 정보를 흘릴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연 수구세력의 개혁방해 시도가 있는 것인지,새 정부가 정체를 밝혀낼 수 있을 것인지가 관심이다.
○…『아니 본인도 잘 모르는 5촌이 북한에서 계급이 뭐라는 사실을 일반 사람들이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런 정보는 아무나 가질 수 있는게 아니예요. 어디서 나왔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잖아요.』
9일 오전 청와대 모수석비서관실. 작금의 인사소용돌이가 화제로 튀어나오자 이 방의 주인은 표정이 상기되어갔다.
각종 투서·제보가 『개인적인 불만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질문에 이 고위관계자는 『그런 것도 있겠지만 상당수는 「어두운 곳」에서부터 체계적으로 흘러나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청와대는 지금 부분적으로 긴장과 당혹감에 싸여있다. 만사라던 인사가 뒤엉켜 당혹스럽고,파문의 배경이 수상해 조금은 긴장되어 있다.
8일부터 김 대통령과 주요 참모들은 투서공격의 뒤에는 「반친 정부세력」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고 공개적으로 치고나왔다. 이른바 「수구·반개혁세력의 반발」설이다.
김 대통령은 8일 낮 언론사 사장들과의 청와대 오찬에서 『개혁하자면 역풍도 저항도 있게 마련인데 그런 조짐이 벌써 나타나고 있다』고 경고신호를 발했다. 김 대통령은 시적인 표현까지 써가며 이를 「신한국의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라고 묘사했다. 투서·제보가 신문사에 몰리는 대목을 짚어 김 대통령은 『행여나 이러한 반발계층이 언론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일은 없는지 걱정된다』는 우려까지 나타냈다. 이례적으로 언론에 대해 하기 껄끄러운 말까지 한 것이다.
오후엔 부분개각 발표가 있었다. 이경재청와대 대변인은 상당부분을 「투서배후세력」에 할애했다. 그는 『개혁을 추진하려는 신정부에 저항하려는 세력의 움직임이 나타났다』며 『우리는 이에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굳은 표정을 지었다.
청와대측이 이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개인적인 투서와 조직적인 그것은 우선 냄새가 다르다. 개인적인 것도 많지만 굵직한 것은 대개 조직적인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사정관계자에 따르면 「조직」의 징후는 이렇다. 첫째,정보의 구체성·비밀성이다. C수석비서관에 관한 「북한친척」사실은 기관이 아니고서는 얻기 힘든 정보다. 그의 5촌은 해방전 만주에 갔다가 좌익에 물들었으며 거창 양민학살 사건후 월북,북한군 고급장교가 됐는데 이를 일반인이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관계자는 박희태 전법무장관의 딸 문제나 김정남사회문화수석의 좌파 일본 잡지기고설 같은 것도 「전문정보」라고 분류했다.
둘째는 투서공세의 모양새라고 한다. 『전문적인 수사문구가 보이는가 하면 상세한 수치가 들어있기도 하다. 양식이나 방법도 비슷하다. 특히 공개기관 보다는 영향력 있는 특정인사에게 투서가 제공되는 것도 이상하다』고 사정전문가는 설명한다. 청와대측은 그러나 조직적 유포세력의 결정적인 증거나 흔적은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심증만 있을뿐 물증이 없다. 그래서 『인사실책을 만회하기 위해 있지도 않은 세력에 책임을 덮어씌우려는 것이 아니냐』고 의심받기도 한다.
이러한 의문은 조사에 착수한만큼 가부간 결론이 날 것이다. 청와대측이 더 이상의 「정보유출」을 막기위한 경고성으로 수구책 동설을 의도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냄새도 난다.
청와대측은 「개혁반발세력」에 대해 두갈래로 대응하고 있다. 하나는 강공책인듯 하다. 이 대변인은 『몇가지 증거에 대해 관계기관에서 추적·조사를 진행중』이라고 천명했다.
다른 하나는 개혁의 실체를 설명해 반발가능 세력을 위무·설득하려는 노력이다.
김 대통령이 기회있을 때마다 『우리가 하려는 개혁은 특정인이나 집단을 소외시키고 피해를 주려는 것이 아니다』『도려내되 기틀이 흔들려서는 안된다』고 설득하는 이유다.
청와대측은 개혁의 파장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의원 전원 재산공개가 여권에 파열과 불안의 기류를 깔자 공개대상자의 폭을 줄이는 안의 검토도 그런 입장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균형을 잘 잡지 못하고 밀리는 인상을 주면 그 순간부터 개혁은 물건너 갈 수 밖에 없다는 확신만은 요지부동이다.<김진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