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요한의나!리모델링] 잔소리 습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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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도 대인관계는 참 어렵습니다. 제 경우에는 선의의 행동이 오해를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잘난 사람은 아니지만 상대에게 문제가 있으면 안타까운 마음에 조언을 하는 편입니다. 어떤 때는 상대가 고마워하지만 또 어떤 때는 제 관심을 오만이나 간섭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 속상합니다. 그럴 때면 괜히 잔소리를 한 것 같아 후회되기도 하고 왜 나의 진심을 모를까 싶어 야속하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회사에서도 그런 일이 많았지만 이제는 자제를 해 별로 문제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가까운 친구나 애인 관계에서는 아직도 자제가 잘 안 됩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야 직성이 풀린다고 할까요? 최근 사귄 여자친구도 제 이런 습관을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습니다. 쓸데없이 잔소리하는 아빠처럼 느껴진다나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얼마 전 인터넷 상담 게시판에 올라온 회사원 P씨의 고민이다. 어디 P씨만의 문제랴. 많은 부모들이 이와 비슷한 고민에 갈등한다.

 부모로부터 정신적으로 독립하고 싶어 하는 청소년기 아이들의 눈에는 모든 부모가 잔소리꾼처럼 보이기 쉽다. 그런데 유독 그런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녀와의 갈등을 못 견디는 부모가 있다. 이들은 성장을 위한 정상적 반항을 병적이라 생각하거나 있어선 안 될 반란으로 판단해 섣불리 진압을 시도한다. 야단치고 사사건건 잔소리를 함으로써 잠시 휘어진 것을 억지로 펴려 힘을 준다. 하지만 역효과가 날 때가 많다. 그래서일까? 청소년들에게 원하는 부모상을 물으면 ‘잠시 흔들리거나 성적이 떨어져도 믿음을 가지고 기다려 주는 부모님’이라는 답이 많이 나온다.

 사실 인간 관계란 오해의 연속이다. 좋은 뜻으로 한 행동이 상대에게는 다르게 전달되는 경우가 참 많다.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마음의 틀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신을 이해할 때는 동기 중심으로 생각하지만 상대를 이해할 때는 행동을 가지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말도 있을 것이다.

 때문에 다른 사람의 삶에 끼어들 때는 조심해야 한다. 바둑이나 장기를 둘 때도 누군가 훈수를 두면 좋은 수라는 걸 알면서도 기분이 상하곤 한다. 하물며 중요한 삶의 문제에 있어 허락하지 않는 누군가가 끼어들어 이래라저래라 하는 상황에랴. 조언의 옳고 그름을 떠나 기분 상하기 십상이다. 관심과 애정으로 다가간 것이라 해도 받는 입장에서 준비가 안 돼 있으면 거북한 간섭이 되는 것이다.

 이런 갈등을 피하려면 관심과 간섭의 차이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기준은 의외로 간단하다. 자신의 동기가 아닌 상대의 반응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다. 즉 상대가 좋아하면 관심이고 상대가 싫어하면 간섭이다. 물론 상대가 싫어한다 해서 무조건 무관심해지는 것이 정답은 아니다. 이때는 관심을 관심 그대로 전달하려는 노력과 기술이 필요하다. 상대가 원할 때, 상대가 원하는 방식으로,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는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문요한 정신과 전문의 mt@mentaltraining.co.kr

<잔소리를 줄이려면>

①‘노크’를 하라. 아이 방 문도 확 열고 들어가지 않듯 상대의 마음에 들어갈 때도 노크를 해야 한다. 상대가 들어오라는 사인을 보내면 그때 들어간다.

② 문제 속에 항상 답이 있다. 상대를 문제 자체로 보아서는 안 된다. 간섭이 아니라 관심이 되려면 상대에게 문제를 해결할 자원과 능력이 있음을 먼저 믿어야 한다. 또한 답을 주려 하지 말고 질문을 던져야 한다.

③ 다른 사람에게 끼어들 때는 그것이 기호나 취향의 문제는 아닌지, 꼭 지켜야 할 공통적 가치의 문제인지를 한번 더 고민한다. 기호나 취향의 문제라면 그 차이를 인정하라.

④ 관계에서 원치 않는 개입을 하는 사람들은 ‘~해야 한다’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는 식의 의무나 경직된 신념을 가지고 있다. 이를 ‘~할 수 있다’ 처럼 융통성 있는 가치와 신념으로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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