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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창작 뮤지컬 ‘댄싱 섀도우’ 초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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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명작이란 과연 무엇인가. 뮤지컬과 음악극의 구별점은 어디에 있을까. 작품성과 대중성은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것일까. 창작 뮤지컬 ‘댄싱 섀도우’(사진)는 한국 뮤지컬계와 관객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는 문제작임에 틀림 없다.

단언컨대, 대형 창작 뮤지컬 초연 작품으로 이만큼 안정적인 뮤지컬은 일찍이 없었다. 아리엘 도르프만(대본)·에릭 울프슨(작곡)·폴 게링턴(연출)로 포진된, 세계적 명성의 창작진들은 ‘명불허전’이란 말이 결코 거짓이 아님을 2시간40분간 보여주었다.
 
스토리는 특별히 튀는 부분 없이 일정한 수준을 유지했다. 아련한 듯 가슴을 울리는 음악은 세련함을 선사했다. 막이 오르면서 두텁게 무대를 꽉 채우는 나무들의 묵직함은 이 작품이 결코 만만하게 다가오지 않을 것임을 직감케 했다. 무엇보다 ‘댄싱 섀도우’의 미덕은 ‘빛의 향연’이다. 대부분 어두운 톤으로 무게감을 실은 조명은 때론 흩날림과 때론 미묘한 색깔 톤으로 “빛에도 사연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격조와 품위를 느낄 수 있었다면 그 공은, 많은 부분 ‘조명’의 덕이다.

그러나 ‘댄싱 섀도우’는 거기까지였다. 텍스트 자체론 하나의 완결성과 통일감이 있었지만 가슴을 울리는 그 무언가는 없었다. 고(故) 차범석 선생의 원작 ‘산불’에서 기본 플롯만 따온 채 새롭게 각색한 우화 얘기는 지나친 상징과 비유의 연속이었다. 낮엔 ‘태양군’, 밤엔 ‘달군’이란 단순한 이분법도 남과 북의 대치라는 원작의 치열함을 새롭게 부활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숲은 영혼의 안식처”라며 울부짖는 여주인공 나쉬탈라의 절규 역시 공허하게 무대를 감돌 뿐이었다. 리얼리즘을 거세하고 우화로 풀어낸다면 과연 개연성을 실종시켜도 괜찮은 것일까.
 
‘댄싱 섀도우’는 기획 단계부터 세계 무대를 지향해 원작의 한국적 색깔을 철저히 탈색시켰다. 하지만 공감과 설득력이 약한 설정에서 비롯된 ‘국적불명’의 작품이 글로벌한 작품은 아닐 것이다.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류만이 범람하는 한국 창작 뮤지컬 현실에서 깊이 있는 작품 선택과 과감한 시도로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 제작진에게 박수를 보내야겠지만, 가슴에서 충만한 환호를 보내기엔 아직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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