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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대운하 보고서 박근혜 캠프로 먼저 유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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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경기경찰청이 9일 경부운하 보고서 유출 사건의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수자원공사가 작성한 37쪽짜리 보고서가 언론에 보도(6월 4일)되기 전인 5월 31일 한나라당 박근혜 경선 후보 측에 먼저 보고서의 내용이 흘러 들어갔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이로써 논란을 빚어 온 보고서의 정치권 유출 경위와 전모가 드러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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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밝힌 유출 과정은 이렇다. 결혼정보업체 대표 김현중(40)씨는 5월 26일 수자원공사 김상우(55) 기술본부장에게서 입수한 보고서의 복사본을 자신이 다니는 서울대 행정대학원의 방석현(62) 교수에게 넘겼다. 방 교수는 박근혜 후보 캠프의 정책자문위원회 행정개혁특별위원장을 맡고 있다. 방 교수는 이 문건을 복사해 같은 달 27일 정책 연구모임 동료 교수 세 명에게 넘긴 데 이어 31일 오전 11시 박 후보 캠프의 유승민 의원에게 전화로 보고서의 내용을 알려줬다. 유 의원은 바로 이날 오후 2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가 경부운하 관련 타당성을 검토하는 문건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김현중씨와 김상우 본부장에 대해 수자원공사법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방 교수에 대해서도 같은 혐의로 조사 중이다.

이 같은 수사 결과가 발표되자 한나라당 '빅2(이명박.박근혜 경선후보)' 진영 간에는 공방이 재연됐다. 이 후보 측은 수사 결과 중 유출 경로를 강조하면서 박 후보 측을 공격했다. 이에 맞서 박 후보 측은 위.변조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역공을 펼쳤다. 양측은 모두 서로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이 후보 측 박희태 선거대책위원장은 오후 캠프 회의를 주재하면서 "정부기관과 야당이 실질적으로 야합했다"며 "야당사(史)에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중대한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보고서 유출 경로에 방 교수가 들어 있음을 비판한 것이다. 박 위원장은 또 "공작정치에 야당이 이용되는 선례를 끊기 위해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후보 캠프설'을 가장 먼저 제기했던 정두언 의원은 유승민 의원을 걸고 넘어졌다. 정 의원은 이 후보 캠프의 기획본부장을, 유 의원은 박 후보 캠프의 정책총괄본부장을 맡고 있다. 정 의원은 "유 의원이 의원직 사퇴까지 거론하며 난리를 피웠던 것은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이었다"며 "박 후보가 국민과 당원 앞에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의원은 지난달 21일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 보고서가 특정 캠프 모 의원에게 전달됐고, 이 의원이 조작한 보고서가 언론에 흘러 들어갔다"고 주장했다. 이 발언이 알려지자 유 의원은 "정 의원의 말은 100% 거짓말"이라며 "그렇지 않다면 의원직을 사퇴하겠다"고 발끈했다. 정 의원이 언급한 '모 의원'이 자신을 가리킨다고 판단한 것이다.

수사 결과 발표 이후에도 유 의원은 성명서를 내 "내가 보고서를 조작하지 않았다는 게 밝혀졌다"며 "정 의원은 '덮어 씌우기'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후보 캠프는 방 교수의 연루 사실이 밝혀진 데 대해서도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캠프 이혜훈 대변인은 "문서 유출이 이뤄지던 시기에 방 교수는 자문교수가 아니었다"며 "방 교수는 지난달 11일 선대위가 발족하면서 대거 합류한 자문교수단 중 한 명"이라고 말했다.

정영진.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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