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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문단은 폐허 그 자체였다"|모스크바 구소 작가 동맹 방문기|정소성<소설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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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문학의 나라 러시아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들이 그렇게도 존경해마지 않던 레닌 동상의 숫자 못지 않게 시인 푸슈킨의 동상이 전국적으로 흩어져 있고, 웬만한 작가·시인의 기념관이 서 있다는 러시아. 그러나 오늘날의 러시아 문단은 완전치 폐허상태에 빠져 있었다.
지난 2월9일엔 모스크바에 있는 구 소련 작가동맹을 방문했다. 레닌의 주문으로 이 단체는 형성되었고, 구 소련의 체제수호에 절대적으로 기여했던 단체였다. 그러나 이 단체는 해체되었고 모스크바 작가동맹이 들어서 있었다.
국가의 재정지원은 전혀 없었고, 구체제가 남긴 건물의 임대료 등으로 어려운 살림을 꾸려 가고 있었다. 이 단체의 명예회장이자 고리키 문학대학 평론학부교수이며 소설가인 구 세이프와 월간 문예지『모스크바]의 편집책임자 구로핀 블라디미르 니콜라이비처, 이 단체의 부의장인 코벵코 빅토리 퍼블로 비치와 근 두 시간에 걸친 대담을 가졌다.
그들은 문학에 대해 깊은 회의에 빠져 있었다. 그들에게는 창작의욕 같은 것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젊은 층들이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를 거의 읽지 않는다고 했다. 혁명작가인 고리키나 위대한 혁명시인인 바예코프스키 등은 더더욱 읽히지 않는다고 했다. 요절 시인 푸슈킨과 에세넌 등은 조금 읽히는 편이라고 했다. 250만 권의『모스크바』지는 5천 권도 안 팔린다고 했다. 이 잡지는 구 소련 작가동맹의 기관지 구실을 했었다.
지금 러시아문단은 3분되어 있었다. 옐친의 개혁주의를 지지하는 예프트센코 등의 개혁파와 구체제의 회복을 주장하고 미국자본에의 복 속을 거부하는 본다레프 등의 보수파. 그리고 중도파가 그들이다. 지금의 모스크바 작가동맹 집행부는 중도파라고 했다. 이들이 어느 파에 속하든 그들은 거의 대부분 팬을 놓고 있으며, 아주 살기 어렵다는 말을 거듭했다.
구체제하에서는 국가 지원 하에 글을 쓸 수 있었으나 지금은 그것이 전혀 되지 않는데, 자기들은 아직까지 개인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른다고 했다.
이런 와중에 고려인 문학도 갈팡질팡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한국 정부계열 이라고 하는 세칭 고려인협회(한인문화센터)와 북한계열인 조선통일 촉진협의회 파는 따로 신년하례 회를 갖고 있었다.
교포문인들은 알마아타에 많이 살고 있었다. 시인이진·양원식씨, 희곡작가 한진씨 등 이 있었고 이들은 북한출신 유학생이었다. 김아나톨리씨는 서울에 거주하고 있고, 박 일씨는 타슈켄트에 있었다. 소설가 강알렉산드르씨, 여류작가 강게니예타씨가 알마타에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러시아어로 글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이진·한 진씨 등은 한국어로 집필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펜을 놓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필자를 안내했던 정장길씨는 알마아타 대학 교수였고 소설가였는데, 월급이 20달러밖에 되지 않아 지금은 그만두고 한국인 관광안내와 상사의 일을 거들며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그는 호신용으로 소형권총을 차고 있었다.
문학의 나라는 폐허와 무질서의 나라로 전락해 있었다. 그들은 언제 다시 그 찬란한 문학의 나라 러시아를 회복할 것인가. 암담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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