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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초대석] 자산운용사 템플턴 코리아의 애시턴 대표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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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호 21면

신인섭 기자

“펀드는 진화한다. 한국 투자자가 놓치고 있는 게 바로 이 점이다.”
프랭클린 템플턴 코리아 대표인 앤드루 애시턴(40·사진)에게 국내 투자자의 성향을 물었는데, 그는 펀드 진화라는 말을 먼저 입에 올렸다. 인터뷰 초기 딱딱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 인사치레로 던진 질문에 그는 약간의 수사학적 기교가 곁들여진 말로 풀어나갔다.

“오래된 펀드의 진가를 알아야”

“펀드는 설정 이후 경제와 시장 변화에 따라 바뀔 수밖에 없다. 운용 철학·전략·전술을 바꿔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도태된다. 오랜 세월을 견딘 펀드는 환경변화에 따른 많은 문제를 이겨낸 셈이다.”

애시턴이 한국어를 못해 우리 속담을 인용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하고 싶은 말을 정리하면 ‘묵은 장맛이 최고’쯤이다. 펀드가 본격화한 지 10년이 채 안 된 국내 시장에서 묵은 장맛을 내는 펀드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60여 년 역사를 자랑하는템플턴자산운용을 티나지 않게 자랑하는 말로 들렸다.

그러나 애시턴은 “한국 투자자의 일반적인 약점을 지적하기 위해서”라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 투자자들이 단기 고수익에 치중해 장기 투자수단인 펀드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며 “어떤 펀드가 오래 생존하면 유·무형의 노하우가 축적되는 법”이라고 말했다. 또 “오랜 경험이 있는 자산운용사와 꾸준히 거래하면 투자자는 따로 돈 들이지 않고도 다양한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요즘 자산운용사들이 경쟁적으로 새로운 전략과 노하우를 강조하며 새 펀드들을 내놓고 있는데, 그의 말대로라면 새로운 펀드가 나왔다고 갈아타기보다는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 펀드’를 활용해봄 직도 하다.

그러나 장기투자 좋은 줄 누가 모르는가. 다른 나라와 견줘 높은 펀드 수수료가 장기투자를 가로막는 요인 중 하나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돈을 한 펀드에 오래 묵혀둬 수익이 커질수록 수수료 부담도 늘어난다. <중앙sunday 5월 20일자 23면, ‘펀드 르네상스의 적, 과다 수수료’ 참조>

“맞는 지적이다. 자산운용사가 갖는 수수료는 높다고 말하기 힘들지만 판매 수수료는 높은 게 사실이다. 투자자들에게 적잖은 부담일 것이다.”

애시턴은 이 말을 해놓고 순간 긴장하는 표정을 지었다. 펀드를 팔기 위해선 기댈 수밖에 없는 국내 은행들을 의식하는 듯했다. 그러나 이내 표정을 수습한 뒤 “한국에서는 판매회사(은행)의 파워가 막강해 운용사로선 어쩔 수 없다”며 “하지만 약간의 노력으로도 상황이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어떤 노력이기에 작다고 말할까. 그는 온갖 펀드만을 파는 ‘펀드 수퍼마켓’을 예로 들었다.

“한국은 인터넷 기반시설이 잘돼 있는 나라다. 인터넷을 활용한 펀드 수퍼마켓이 생기면 판매 수수료가 내려간다. 팔려는 사람이 많으면 경쟁이 치열해져 판매 수수료 인하 경쟁이 벌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실제로 미국과 영국 등 펀드 선진국에서는 다양한 운용회사들의 펀드를 파는 전문 판매회사가 많다. 한국처럼 은행이 펀드 판매를 사실상 독점하지 않아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수수료 인하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만큼 투자자의 수수료 부담이 한국과 견줘 낮다.

애시턴은 다양한 지역을 맡아본 템플턴 내 국제 일꾼이다. 유럽과 중동·남아프리카·아시아 지역을 주로 담당했다. 그의 안목을 빌려 세계 경제와 증시의 흐름을 알아보고 싶었다.

“투자전략가가 아니고, 최고경영자로서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힘들다. 솔직히 고백하면 한국 증시에 대해 내 의견을 말할 만큼 연구하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미국 재무부 채권값이 떨어지는 움직임(수익률 상승)은 주의 깊게 지켜볼 만한 사건이다.”

애시턴은 채권 수익률이 오르는 것은 그동안 글로벌 투자자들이 많이 보유한 장기채권을 팔아치우고 있기 때문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들이 미국 국채값을 비싸다고 판단하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자연스럽게 기술적 조정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투자자가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미국 국채 수익률이 상승하면 기업이 규모를 확장하기 위한 투자(설비투자와 인수합병 등)가 둔화할 수 있다. 그만큼 미 경제성장이 둔화할 것이다. 이는 한국 증시에도 다소 비관적일 수 있다.”

이와 함께 애시턴은 “미 국채 수익률 상승 덕분에 전 세계 경제와 증시가 스스로 건강한 조정을 거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중기적으로 볼 때 나쁘지만은 않다”고 덧붙였다.

최근 국내 투자자들이 해외 투자에 관심이 많은 점을 들어 어느 나라에 투자하는 게 좋을지도 물어봤다.

“한국 투자자들이 중국과 베트남·일본 등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투자하는 곳이 일부 지역에 몰려 있다. 이들 나라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탓도 있지만, 지리적·문화적으로 비슷하기 때문인 성싶다.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미국과 유럽·중동·아프리카 등에도 관심을 돌려 전체 투자금 가운데 일부를 할당해 놓는 게 좋다.”

애시턴은 지난해 10월 한국 대표로 선임됐다. 이제 약 10개월쯤 흘렀다. 한국 자산운용업계의 앞날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해졌다.

“한국 자산운용 시장의 성장잠재력은 아시아 최고다. 일본이 있지만 커질 만큼 커져 버렸다. 중국 펀드산업은 이제 싹 트는 단계다.”

이 밖에도 세계 10위권인 한국 경제규모와 잘 갖춰진 금융 인프라 등도 매력적인 요소라고 애시턴은 말했다.

“특히 기업연금 등 자산운용사들이 끌어들여야 할 돈도 풍부하다. 게다가 가계자산 가운데 90%(상공회의소 추정) 정도가 부동산에 투자돼 있는데, 이 돈은 언젠가 펀드로 올 수밖에 없다. 자산운용사 처지에서 보면 아주 좋은 시장이다.”

그의 설명을 들으니 왜 최근 JP모건자산운용 등 세계적 회사들이 속속 한국 시장으로들어오기 시작하는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면 외국계 자산운용사로서 국내 진출 1호인 템플턴은 경쟁회사의 국내 진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우리가 한국에 들어온 지 10년이 됐다. 외국계 회사로서 한국 시장을 가장 잘 안다고 자부한다. 단순히 본사에서 펀드를 가져다 팔지는 않는다. 한국 투자자와 시장에 맞는 펀드를 자체 개발해 선보이고 있다. 게다가 최고 수준의 자산운용 인력을 키워 한국 자산운용업 발전에 기여할 계획도 구체적으로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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