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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아이폰 열풍 어떻게 봐야 하나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7호 20면

아이폰 판매점 앞에 길게 늘어선 줄, 프로그램 해부에 뛰어든 전 세계 해커들, “우리 지역에서도 빨리 판매하라”고 아우성치는 유럽 소비자들….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를 ‘광기’라고 표현했다. ‘아이폰 열풍과 같은’이라는 뜻의 ‘iPhenomenal(아이피나머널)’이라는 단어가 탄생했을 정도다. 이는 ‘아이폰(iPhone)’의 o와 e의 순서를 살짝 바꿔 ‘현상적인·경이적인’ 의미를 지닌 ‘피나머널(Phenomenal)’과 합성한 단어다.

불친절한 기존 휴대폰에 소비자 반란

심지어 독실한 기독교인들이 깜짝 놀랄 만한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아이폰에 ‘예수폰(Jesus Phone)’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수많은 사람이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듯 아이폰 탄생을 기다렸기 때문이다. 또 그의 복음을 듣기 위해 인간 띠를 만든 것처럼 아이폰을 사기 위해 줄선 풍경을 빗댄 별명이라고 외국 언론은 전했다. 이런 아이폰 광기는 소수 마니아의 컬트라는 이른바 집단취미일까? 아니면 휴대전화 사용자들의 반란일까?

아이폰 개발 이끈 스티브 잡스

논쟁이 뜨겁다. 글로벌 정보기술(IT) 업계와 전문가들이 아이폰 열풍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를 놓고 갑론을박하고 있다.

세계적인 사무기기 업체인 제록스의 존 실리 브라운 전 실리콘밸리연구소 소장은 애플 마니아의 우상인 스티브 잡스의 꾀라고 풀이했다. 지능적으로 아이폰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고 풀이했다.

잡스는 애플이 주관하는 콘퍼런스 연설 외에는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전술을 쓰고 있다. 이른바 신비주의 기법이다. 시대의 상징으로 추앙받으며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있는 최고경영자(CEO)가 주로 쓰는 기법이다. 잡스는 이런 기법으로 애플 마니아들을 최대한 감질나게 했다. 그 결과 현재와 같은 ‘아이피나머널’이 일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브라운 등은 아이폰도 획기적인 기능과 디자인으로 판매 초기 관심을 불러일으켰지만 소비자의 기억 저편에도 남아 있지 않은 수많은 전자기기와 운명을 같이할 것으로 보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스폿워치(시계+컴퓨터), 뉴턴사의 손바닥 컴퓨터, 소니의 첨단 음악재생기 등과 같은 운명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 제품들은 개발 단계부터 일부 마니아를 자극했지만 정작 일반 대중의 관심을 끌어내지는 못했다.

잡스 자신도 제품 대중화에 실패한 기록이 있다. 애플 사내 파워게임에서 밀려 퇴사한 뒤 야인으로 지내며 개발한 넥스트(NeXT) 컴퓨터는 일부 마니아를 제외한 소비자들한테서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또 유저 인터페이스(UI)를 먼저 채택해 아이콘 클릭만으로 작동 가능한 컴퓨터를 내놓았지만, 운영체제와 컴퓨터 본체 일원화 전략을 고수하는 바람에 MS의 빌 게이츠에게 IT 황제 자리를 내줘야 했다.

그러나 이번 아이폰은 다르다는 반론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미국 벤처 투자가이면서 CNBC IT 애널리스트인 폴 케드로스키는 기존 휴대전화에 신물이 난 소비자의 반란이 아이폰 열풍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월스트리트 저널(7월 3일자)에 기고한 칼럼에서 아이폰에 열광하는 사람은 애플 마니아나 스티브 잡스의 추종자가 아니라고 했다.

케드로스키는 “아이폰에 열광하는 사람은 기존 휴대전화에 실망한 소비자들”이라고 지적했다.

케드로스키와 같은 이들은 애플이 아이폰 출시를 앞두고 마니아나 소비자를 감질나게 하는 마케팅 기법을 사용한 적도 없고, 광고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붓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소비자들이 스스로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심지어 경쟁자들이 휴대전화 개발 경쟁에서 애플에 선수를 빼앗긴 아쉬움을 감추며 애써 아이폰 열풍을 평가절하했다고 말했다.

케드로스키는 애플의 경쟁사들이 내놓은 기존 휴대전화라는 게 업무의 연장인 통화 외에 재미있는 것이 없다고 지적한다.

그는 “기존 제품은 하나같이 미로 같은 단추 조작을 요구해 사실상 소비자 위에 군림한 상품”이라고 꼬집었다. 소비자는 아이폰처럼 ‘친절한 장치’(그림)를 원했다는 것이다.

케드로스키는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반란의 기운이 무르익었다고 주장했다. 아이폰은 이런 반란의 기운을 폭발시킨 불씨일 뿐이라고 말했다. 더 나아가 다른 휴대전화 메이커나 이동통신 업체가 이런 소비자 불만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면 외면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어느 쪽이 맞을까.

아이폰의 초기 판매 실적은 케드로스키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듯하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미국 10개 주에서 판매 닷새째인 2일 이미 제품이 동났다고 전했다. 애플이 판매 자료를 발표하고 있지 않지만 전문가들은 그동안 70만 대가 팔린 것으로 추정했다. 애플의 예상치보다 20만~30만 대가 많은 수치다. 내년 말까지 2000만 대가 팔릴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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