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造船 등 세계 일등기업 등장 … 경제 체질 바뀌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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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호 19면

지난달 30일 경남 거제시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바다 위에 떠 있는 플로팅 도크에서 7만t급 유조선이 바다에 진수됐다. 길이 237m, 높이 44m인 이 배는 63빌딩(높이 249m)을 옆으로 누인 것과 비슷한 규모다. 진수식에 참여한 외부 인사들의 눈이 동그래졌지만 회사 관계자는 “1년에 50척씩 배를 인도하다 보니 거의 매주마다 이 같은 광경을 본다”며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경제 교과서 다시 쓸 판 #수출 왜 끄떡없나

환율이 크게 떨어지는 데도 불구하고 한국의 수출이 기록적인 성장세를 보이는 버팀목은 조선업과 같은 ‘대표선수’들의 활약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수출 비중이 95% 이상인 조선업종의 수출액은 올해 모두 27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221억 달러)보다 22.2%, 2000년(84억 달러)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조선공업협회 구본성 과장은 “20피트 컨테이너 1만 개 이상을 실을 수 있는 대형 컨테이너선과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은 사실상 한국에서만 만들 수 있다”며 “중국의 설계기술과 건조 경험이 축적되기 전까진 독주가 계속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수출 대표 품목인 반도체는 최근 단가 하락이라는 악재를 만났지만 선전하고 있다. 상반기에만 189억 달러어치를 팔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3% 늘어났다. 철강과 자동차는 각각 30%와 12%의 수출 신장률을 보였다.

‘대표선수’가 확실하다는 것은 한국의 산업구조가 그만큼 고도화됐다는 뜻이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총수출 중 중화학공업이 차지하는 금액은 전체의 91.4%에 달했다. 농산물 등 1차 산품과 경공업제품 등 기타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8.6%에 불과했다. 중화학공업과 기타산업의 비중은 2000년만 해도 각각 81%와 19%였다. 무협 국제무역연구소 박기임 연구원은 “중화학공업은 인건비 등 원화로 지출되는 고정비의 비중이 작아 환율 하락에 따른 영향을 적게 받는다”고 설명했다.

장기간 계속된 환율 하락에 맞서 기업들이 꾸준히 경쟁력과 생산성을 높여온 것도 환율 효과를 희석시킨 요인이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상장기업 중 수출 비중이 50%가 넘은 132개 기업을 분석해 보니 2002년 이후 5년간 기업들은 생산성 향상을 통해 13조7000억원의 수지 개선 효과를 거둔 것으로 분석됐다. 같은 기간 환율 하락(9조5000억원)이나 원자재 가격 상승(16조1000억원)에 따른 손실을 상당 부분 벌충한 셈이다. 글로벌 전략에 따라 기업들이 해외에 설립한 공장들도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부가가치가 높은 핵심 부품을 대부분 국내에서 가져다 쓰고 있기 때문이다. 상반기 중 총수출이 14.4% 증가한 데 비해 부품 및 소재 수출은 17.9% 늘어났다.

대외 여건도 큰 몫을 했다. 해마다 10% 이상의 성장세를 보이며 ‘세계의 공장’으로 떠오른 중국 옆에 있는 이점을 톡톡히 누린 것이다. 1995년 전체 수출에서 7.3%에 불과했던 대중 수출은 지난해 21.4%로 뛰어올라 한국 제품의 최대 수입국이 됐다. 반면 원-달러 환율의 영향을 바로 받는 대미 수출은 같은 기간 19.3%에서 13.3%로 크게 줄었다. 이에 따라 2000년 전체의 51%를 차지하던 선진국에 대한 수출이 올해 36%로 떨어진 반면 개발도상국의 비중은 49%에서 64%로 높아졌다. 달러에 대해 주요 통화가 모두 강세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수출선 다변화는 달러 약세의 영향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세계 경제가 꾸준한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는 점도 환율의 악영향을 반감시킨다. 달러로 표시한 수출가격을 올려도 수요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 성장률은 2000년 2.7%에서 지난해 5.1%로 꾸준히 호전됐다. 미국도 지난해까지 3년째 호황 수준인 연 3% 이상의 성장세를 보였다.

하지만 수출 호조엔 ‘거품’도 끼어 있다. 국제 원자재가 상승이 가격에 반영돼 생
긴 착시 효과다. 석유화학제품 수출액은 2002년 64억5400만 달러에서 지난해 206억2300만 달러로 급증했다. 올 상반기엔 137억 달러어치가 수출돼 반도체ㆍ자동차ㆍ선박에 이어 4대 수출품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물량 기준으론 같은 기간 2억4000만 배럴에서 2억8000만 배럴로 소폭 늘어났을 뿐이다. 원유가가 배럴당 23달러 수준에서 60달러 이상으로 치솟으면서 비슷한 물량을 팔아도 금액이 커진 것이다. 무협은 전체 수출액의 25.8%를 차지하는 광산물ㆍ철강금속ㆍ화학제품에 이 같은 경우가 상당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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