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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 2인 외운듯 같은말만/광운대 부정 어디까지 파헤쳐질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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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곳곳에 「숫자」줄이기 각본 의혹/관련자료 없애 규명 애먹을듯
자수한 광운대 조하희교무처장(53)과 전영윤교무과장(54)이 말하고 있는 「부정」의 전모는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이들째 계속된 철야조사에서 이들의 진술내용은 곳곳에서 정황과 맞지않는 점들이 드러나 사전각본에 따른 축소·은폐가 아니냐는 의혹을 짙게하고 있다.
「충분히 입을 짜맞춘뒤 자수할 것」이란 당초 예상대로 마치 외어오기라도 한듯 똑같은 말들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5박6일간의 동반잠적중 이들이 꾸몄을 것으로 추정되는 것중 하나는 첫 범행시기.
92학년도 후기입시 때부터 부정입학이 시작됐다고 말하고 있으나 이미 그전부터 범행이 이뤄졌음을 짐작케 하는 정황들이 많이 드러난다.
우선 주장대로 지난해 후기원서접수 시작 2일뒤 계획이 꾸며졌다면 접수마감일까지 불과 이틀만에 부정입학 대상자 18명을 「급조달」했다는 얘기가 된다.
완벽한 조작수법을 연구해내고 또 1억원씩을 즉석에서 낼 수 있는 학부모를 18명씩이나 모으기엔 너무도 짧은 기간이다.
다음으로 이 보다 15개월 앞서 90년 10월28일 작성된 광운유치원 관리주임 조정남씨(59·여·구속) 부부의 각서부분도 설명하기 어렵다.
동생인 조무성총장 앞으로 된 이 각서는 「앞으로 부정입학 알선이나 이와 유사한 행위를 일절 하지 않겠다」고 돼있어 이미 부정합격이 상습적으로 진행돼 왔음을 보여주기 때문.
실제로 조정남씨는 91학년도 전기입시때 이두산씨(54·강동교교사·구속)를 통해 유모군(22) 등 4명으로부터 7천만∼9천만원씩을 받고 부정입학 시키려다 실패한뒤 이중 유군만 92학년도 전기입시때 합격시킨바 있다.
또 올 후기에서 딸을 경영학과에 부정합격시킨 군장성 부인 명혜화씨(46·여·구속)는 지난해 8월 친구로부터 『서울 대일외국어고교사 김성수씨(수배중)가 오래전부터 광운대에 부정합격을 시키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7일 경찰에서 진술했다.
이같은 정황들은 광운대의 부정입학 비리가 오래전부터 시작됐다는 심증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이미 적발된 부정사례중 92학년도 후기입시 때를 첫 범행시기로 삼아 비리의 규모를 줄여보려 한 것으로 보인다.
또 조 총장이 92학년도 후기원서 접수일 하루전 미국으로 떠난 점을 고려,그의 부재중 참모진들이 범행을 계획해 시작한 것으로 만들어 조 총장의 책임을 줄여주려는 충성스런 계산도 작용했을 수 있다.
경찰은 따라서 이들이 도피중 현재 신병치료차 미국에 가있는 조 총장 및 학교간부들과 통화,각본을 짜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있다.
또 부정합격생 숫자도 얼마나 줄여 자백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대목. 이미 올 전기대 이전의 입시 관련자료를 모두 없애버린 상태여서 숫자를 속여도 진실을 밝혀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수직후 분리신문에서 약속이나 한듯 올 후기 42,전기 10,지난해 후기 15명 등 모두 67명을 부정합격시켰다고 똑같이 진술했다가 밤샘조사를 받으면서 72명으로 정정하는 등 사전입맞춤 흔적을 드러냈다.
또 만성재정난속 최근 몇년간의 풍족한(?) 재정운영도 의심 대상.
학교측이 현재 교내에 신축중인 문화관·연구관 등 2개 건물 공사비로 91년부터 시공회사에 지급한 공사비는 지금까지 63억여원이며 92년의 재단전입금은 20여억원.
1년 남짓한 기간중 80여억원이 급조달된 셈이지만 추적 결과 92,93학년도 입시에서 거둔 부정입학 기부금(70억6천만원)중 17억원만이 재단을 통해 공사비로 지출됐을뿐 53억원은 잔고로 남아있다.
따라서 17억원 외에 지난달 21일 은행을 통해 기채형식으로 지급된 13억원을 더하더라도 50여억원은 어디선가 조달돼 지급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평소 재단의 극심한 재정난을 감안할때 91년 이전 50여억원의 큰돈이 어디서 나왔을까. 91년 이전에도 최소한 50여명의 부정합격생을 통한 기부금을 받았으리라는 추정이 자연스럽다.
올 전·후기를 포함,4년간 보관해야 할 응시학생들의 객관식답안지(OMR카드) 등 입시자료를 대부분 없애버린 것도 부정의 규모를 축소하려는 의도였음이 명백하다.
그러나 이같은 사실들에도 불구,부정합격생 숫자를 파악할 근거가 될 입시 관련자료들이 없어져 부정의 실체는 자칫 은폐될 수도 있다. 관련자들이 스스로 밝히지 않는한 현재로선 사실상 규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꾸며진뒤 계획적인 은폐절차까지 밟은 이번 사건은 따라서 앞으로 경찰의 수사의지와 능력,관련자들의 양심을 시험하는 「숙제」로까지 여겨져 결과에 관심이 모아진다.<김석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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