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동등시장 개방」 요구(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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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클린턴 미 대통령이 자유무역주의자인가,아니면 보호무역주의자인가 하는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 그의 행정부 관료들은 미국이 어디까지나 「공정한 무역」을 요구하고 있으며 결코 보호무역 정책을 취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강조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옹호하는 보다 많은 압력에 직면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거의 예를 찾아볼 수 없는 관민일체형의 미국 주식회사의 색채를 띠고 있다.
클린턴행정부는 통상법 슈퍼301조의 재입법화 추진과 함께 무역상대국들에 미국의 시장개방과 동등한 수준의 노력을 요구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미키 켄터 미 무역대표나 론 브라운 상무장관의 최근의 발언에서도 그같은 기본방침은 분명하게 드러났다. 특히 켄터대표는 국가안보문제를 미국 경제성장의 성공 여부에 직접 연계시킬 예정이며 이에 따라 상대국들에도 시장 개방을 요구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이 역보복을 우려하면서도 이미 한국을 포함한 19개국의 수입 철강제품에 덤핑예비판정을 내린 것도 그같은 무역공세 방침의 하나였다고 보아야 한다.
미국 신행정부의 통상·외교 관리들이 최근에 시장개방이 미흡한 국가에 대해서는 통상법에 따라 철저히 대응하겠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음을 볼때 앞으로 대미 무역마찰의 파고가 생각보다 더욱 격화될게 분명하다.
미 행정부와 자국기업과의 지나친 밀착은 경쟁력 향상을 위한 지원보다 외국제품에 과다한 덤핑판정을 유발할 정도의 보호무역 정책을 낳고 있다. 미국 철강업계나 자동차업계의 불황대책이 고작 덤핑관세를 무기로 한 외국제품의 시장 침투를 막는데 있다면 이는 결코 「공정한 무역」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비록 미 행정부의 정책이 실질적으로 가트(GATT)의 자유무역 원칙에 어긋난다 하더라도 점차 보복의 톤을 높여가는 미 통상팀의 일거수 일투족이 당장 우리의 대미 무역에 영향을 미치는데 있다. 우리가 세계무역 질서 속의 미국의 역할이나 이해에만 매달릴 경우 더욱 고립무원의 처지에 빠지게 될 것이다.
미국이 특별히 관심을 보이는 자본 및 금융시장의 개방이나 지적재산권의 보호문제 등에 대해서는 우리나름대로 교섭력을 발휘할 수 있는 카드를 쥐지 않으면 미국의 일방적인 공세에 밀리게 된다. 세계무역 규범을 준수하면서 우리 국내의 시장경제 질서가 교란되지 않도록 제동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새 행정부의 시급한 과제다. 그러한 점에 대한 기술적이며 실무적인 접근이 매끄럽지 못하면 미국이 내건 「공정한 무역」과 불필요한 마찰을 빚게 된다. 우리도 미국의 예상되는 보복에 대응할 수 있는 역보복조치에 대한 연구와 동병상련의 입장에 있는 외국과의 공동보조 방안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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