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와 우울-어느 수험 낙방생의 어머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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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안개 탓만은 아니다.
일상을 거두어 올리던 커튼들이
저희들끼리 뭐라 수근거리던 날 밤
내 공간에 숨쉴 수 있었던 생명체들은
죽은 듯 일제히 정적 속에 묻혔다
전화기 저 너머의 낭랑하던 아들의 목소리도
소리없이 사그라들고
우린 기쁨의 꼬리를 잡지도 못한채
정적 속에 묻혀야만 했다.
아, 이 세상밖 지금
울고 있을 어미들의 가슴엔
붉은 십자가가 매달려
피를 철철 흘리고 있을 게다.
이 땅 위에 또 하나의 카인을 탄생시킨
죄의 응분으로. 【이영춘】
■약력
▲1941년 강원도 평창출생 ▲1976년『월간문학』신인상 당선 ▲시집『귀 하나만 열어놓고』『네 살던 날의 흔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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