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물' 없는 스포츠 외교 IOC 위원 표심잡기 한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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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평창의 패인 중 하나로 '스포츠 외교력 부재'가 거론된다.

20여 년간 한국을 대표하는 스포츠 외교관으로 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이 물러난 뒤 그 공백을 메워줄 사람이 없었다. 김운용에 대한 욕만 했을 뿐 대안을 마련하는 데는 소홀했다.

김 전 부위원장은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된 뒤 일체의 외부 활동을 접었다. IOC 위원직에서도 물러났다. 그의 공백은 겨울올림픽 유치라는 국가적 사업 달성에 큰 타격을 준 것은 확실하다. 그가 IOC에서 아시아.아프리카의 맹주로서 활동하며 30표 이상을 몰고 다녔던 거물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전통적으로 한국의 텃밭이었던 아프리카와 중남미의 표가 소치의 물량공세에 넘어가는 걸 알면서도 막지 못했다. 아시아권 표까지 러시아 강공에 잠식됐다는 분석도 나왔다.

김 전 부위원장은 겨울올림픽과 악연이다. 2010년 겨울올림픽 유치를 결정하던 2003년 체코 프라하 IOC 총회에서 김 전 부위원장은 IOC 부위원장이 되기 위해 평창의 올림픽 유치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방해했다는 눈총을 받았다. 김 전 부위원장은 이를 계기로 여론의 호된 질타를 받았고, 나중에는 비리혐의로 구속됐다. 그는 "나를 구속하면 한국의 스포츠 영향력이 떨어져 국익에 손해"라고 선처를 호소한 바 있다.

세계적 스포츠 이벤트 유치엔 반드시 스포츠 거물이 필요하다.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 유치는 17년간 국제육상연맹(IAAF) 집행이사를 하면서 영향력을 키운 박정기 이사의 절대적인 역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더구나 폐쇄적인 IOC에서는 개인적 친분이 프레젠테이션의 내용이나 평가단 실사 점수보다 훤씬 큰 것이 현실이다.

김 전 부위원장은 후계자를 키우지 않았다. 국내 주요 직위를 독점했고 해외 스포츠 인사와의 교류도 공유하지 않았다. 자신을 이을 제2의 김운용의 싹을 키우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체육계가 김 전 부위원장의 독주를 막을 시스템을 만들지 못했던 것은 문제다. 정치계처럼 보스 시스템으로 이어져온 스포츠계의 고질이 있었고 김 전 부위원장이 낙마한 지 2년여가 지났는데도 이렇다 할 대표 선수가 나타나지 않은 것도 문제다. 김정길 회장 체제의 체육회가 반성해야 할 문제다.

이제 스포츠 외교력을 어떻게 키울지가 숙제다. 겨울올림픽을 유치하는 문제와 태권도의 올림픽 정식 종목 유지 문제 등 산적한 현안이 많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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