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첨단기술이 치른 시험/대리시험­삐삐커닝 수사 안팎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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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현직교사가 주범 “충격” 대리입시/주관식시험 이용 우려 삐삐커닝
올해 후기대 입시에서 현직교사가 낀 대리시험조직과 무선호출기를 이용한 시험부정행위가 적발돼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이와 함께 대학입시뿐만 아니라 각종 국가·공공기관의 시험에서 부정행위가 널리 행해지고 그 수법 또한 점차 교묘해지고 있어 이같은 부정행위재발을 막을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교사가담 대리시험=서울에서 적발된 대입부정범죄단은 현직교감·교사에다 부유층 학부모·일류대학생 등 말그대로 「호화멤버」들의 치밀한 각본에 따라 이뤄졌다.
현재까지 드러난 이 사건의 총책은 서울K고 국어교사인 신훈식씨(33).
신씨는 『지난해 상가사기분양사건에 걸려 집을 1억5천만원에 저당잡히는 바람에 매달 3백여만원의 사채이자를 물어야 하는 상황에서 「한탕」을 궁리했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신씨는 분양사기를 당하면서 알게된 해결사 김세은씨(37)와 지난해 10월부터 모의를 시작,12월 오피스텔에 사무실을 차리고 동료교사 김원동씨(39)를 끌어들였다.
이들은 곧바로 서울D고에서 함께 근무했던 J여상고 교감 홍정남씨(46) 등 중간브로커역 3명을 통해 「돈은 있으면서 공부못하는 자녀를 둔」재수 또는 삼수 수험생 학부모 3명을 확보했다.
이와 함께 1월초 신문광고를 통해 학비마련이 어려운 일류대학생 등 30여명을 모집,개별면담을 통해 3명을 대리시험요원으로 선발했다.
이들은 3백24점의 학력고사성적으로 올 K대 법대에 합격한 송형렬군(21)과 3백15점의 Y대 1년 이한웅군(20),3백10점의 K대 1년 이명희양(20) 등 수재급.
송군 등은 『수험생 최종지도과외를 해달라』『4년간 등록금이 보장된다』는 등 꾐에 넘어가 대리시험을 치게 됐으며 이제 학교에서 제적과 함께 쇠고랑을 차게돼 앞길을 망친 셈이다.
자신도 3수끝에 올입시에 합격했다는 송군은 『고향의 홀아버지가 송아지를 팔아 어렵게 입학금을 마련해준게 마음아팠다』『모든 준비가 완벽히 돼있으니 걱정말고 대리시험만 쳐주면 앞으로 학비걱정은 안해도 된다는 꾐에 그만 넘어갔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사건을 맡은 서울경찰청 강력과 직원 5명은 지난 10일 브로커들의 대리시험자 선발에서 탈락된 모대학생으로부터 「뭔가 수상한 일이 꾸며지고 있다」는 제보를 받아 수사에 착수했다.
이들은 신문광고의 전화번호 추적,오피스텔 감시,전화통화대상자 내사 등 20일간의 잠복과 끈질긴 추적끝에 대리시험을 마친 29일 저녁 관련자 12명을 모두 검거하는 개가를 올렸다.
◇무선호출기 커닝=29일 광주대 입시에서 적발된 무선호출기 속칭 「삐삐」커닝은 고사장밖에서 일찍 시험을 마치고 나온 사람이나 공모자가 답안을 핸드폰이나 일반전화기로 고사장안의 수험생의 가지고 있는 무선호출기에 입력시켜주는 것으로 방법이 간단한데다 무선호출기가 널리 보급돼 있어 각종 시험에서 이를 막기위한 대책이 시급하다.
특히 호출기의 기종과 기능이 날로 다양화·정밀화되는 추세여서 시험감독관들의 눈을 따돌리기가 쉬워지고 앞으로 암호해독방식을 써 주관식시험에까지 이용될 가능성마저 높다.
현재 보급된 무선호출기는 허리착용형과 만년필형·손목시계형 등 모양에 따라 크게 3가지로 보통 아라비아숫자를 12자리까지 표시할 수 있다.
모두 수신때 신호음이 울리지 않고 진동으로 입력되는 순간을 느낄 수 있어 감독관의 눈만 피해 버튼만 누르면 밖에서 입력한 답안번호를 전달받을 수 있다.
손목시계형은 수신감도가 좋지않은 단점이 있으나 번호확인에 큰 동작이 필요치 않아 지난해 5월 서울 강남운전면허시험장에서 이용되다가 적발된 바 있고 허리착용형이나 만년필·볼펜형도 호주머니나 옷소매에 넣고 사용할 경우 사실상 적발키 어렵다.
이 때문에 이미 국가보안법 채용시험·자격시험 실시기관에서는 2∼3년전부터 부정행위방지를 위해 수험생들에게 무선호출기·핸드폰소지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검신기를 설치하거나 수험생들의 몸을 일일이 뒤지지 않는한 휴대여부를 확인할 수 없어 운전면허 필기시험 등 고사시간 종료이전에 퇴장을 허용하는 시험은 「삐삐」커닝이 감독관 몰래 이뤄질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김석원·이해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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