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 흔적 그대로 ‘105살 예배당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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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국내에 ‘100살’이 넘은 교회가 얼마나 될까. 무려 700개가 넘는다. ‘평양대부흥’도 올해가 100주년, ‘100살 교회’들은 그 자체가 한국 기독교의 산 역사이기도 하다.

8일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한국교회 대부흥 100주년 기념대회’에선 100년이 넘은 교회들에게 동판을 새겨 줄 예정이다.

이 중 ‘105년 전의 그 모습, 그대로’를 간직한 교회가 있어 눈길을 끈다. 국내에서 유일한 ‘일(一)자’형 기와집 형식인 자천(慈川·대한예수교장로회·1903년 건립)교회다. 전북 김제의 금산교회(1908년 건립)도 100년 된 한옥형 교회지만 ‘ㄱ’자 형이다.

일 경북 영천시 화북면 자천3리의 자천교회를 찾았다. 첫눈에 봐도 건물이 독특했다. 야트막한 기와집과 나무로 만든 높은 종탑, 교회가 아니라 마치 ‘민속촌’에 온 느낌이었다. 입구에는 대문도 없었다. 대신 기와를 얹은 정겨운 흙담이 서 있었다. 마당으로 들어섰다. 정면에 기와로 된 본채가 있었다. 여닫이문 아래 주춧돌도 놓여 있었다. 그리고 처마 밑에 ‘禮拜堂(예배당)’이라고 적힌 현판이 보였다. 신점균(52·사진) 담임목사는 “1926년에 만든 현판이다. 대신 종탑에 걸린 종은 일제시대 공출을 당해 1948년에 다시 만들었다”고 말했다.
 
안으로 들어갔다. “와~!”하는 탄성이 터졌다. 천장에 드러난 서까래가 그대로 보였다. 그런데 예배당 가운데 높다란 칸막이가 설치돼 있었다. 그것도 105년 전에 만든 것이다. 신 목사는 “교회를 세울 때는 ‘남녀칠세부동석’이 철저한 시절이었죠. 그래서 예배당을 반반씩 나눈 겁니다. 예배자 자리에서 볼 때 왼쪽은 남자, 오른쪽엔 여자가 앉았죠”라고 말했다.

설교자는 보이지만, 옆쪽은 안 보이는 식이다. 부부라고 해도 나란히 앉을 수가 없었다. 또 예배당을 드나드는 문도 남·녀용이 따로 있었다. 신 목사는 “기독교 전래 당시는 유교 이념이 지배하던 때였다. 순교적 정신이 없었다면 남녀가 모여 함께 예배를 드리기도 어려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자천교회에는 100년 전의 초심, 당시 교인들의 절절한 신앙심이 구석구석 배어 있었다.

105년 역사의 자천교회도 재가 될 뻔한 위기가 있었다. 한국전쟁 때 인민군이 밀고 내려오자 미군은 마을을 향해 무차별 폭격을 가했다. 그때 교인들이 교회 기와 지붕에 올라갔다. 그리고 횟가루로 큼직하게 십자가를 그린 뒤, 영어로 ‘CHURCH(교회)’라고 썼다. 결국 교회와 바로 옆집만 남고 온마을이 쑥대밭이 되고 말았다.

폭격 때 살아남은 교회 옆 집은 3대째 천석꾼 ‘영천 김부자’ 집이다. 지난해 교회는 108년 된 이 천석꾼집을 기증받았다. 보름 전에 타계한 주인이 “교회 때문에 집이 폭격을 면했다”며 교회보다 오래된 이 집을 내놓았다고 한다. 신 목사는 “교인이 아닌데도 집을 기증해 감사할 따름이다. 앞으로 이 집을 수련회용으로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자천교회 교인은 30명. 모두 마을 주민들이다. 부모님도 자천교회에 다녔다는 이상록(50) 장로는 “예배당에 앉아 있으면 옛 선조의 간절함이 절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곳을 찾는 방문객도 많다. 매주 30~40명이 교회를 찾고서 “아직도 이런 교회 문화재가 있구나”라며 놀란다. 요즘도 예배당 건물로 사용하는 자천교회는 2003년에 경북지방문화재자료 452호로 지정됐다. 교인들은 ‘김부자집’도 문화재 지정을 추진 중이다.

영천 글·사진=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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