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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 영주권자에 참정권 줘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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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헌법재판소가 최근 국내에 주민등록이 없는 해외 영주권자는 물론 해외 장·단기 체류자에 대해 선거권을 주지 않고 있는 공직선거법·국민투표법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그러면서 내년 말까지 법을 개정해 선거권을 부여하라고 요구했다. 2005년 1월 재외국민은 약 280만여 명, 이 중 선거권자는 210만여 명으로 추정된다. 선거권 부여 범위를 놓고 모든 재외국민에게 선거권을 주자는 주장과 단기 체류자부터 주는 등 점진적으로 확대하자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양쪽 의견을 들어봤다.

◆찬 성

92개국에서 참정권 보장
정치적 계산에 밀려서야

 대의민주주의에서 국민 주권을 실현하는 선거의 의미가 국내외의 모든 국민에게 동일하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재외국민의 참정권은 국민의 의무 이행을 전제로 하거나, 선거 기술상의 문제를 이유로 부인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민주 시민의 기본 권리다.

 헌법재판소가 재외국민 참정권에 대해 ‘단순 위헌’이 아닌 ‘헌법 불합치’ 판결을 내린 것은 유감스럽지만, 올해 대선을 앞두고 이 같은 결정이 내려져 재외국민 참정권 실현의 물꼬를 텄다는 점은 정말 다행이다.

 우리나라보다 민주주의 역사가 깊은 서구 국가는 물론 아프리카 국가들까지 92개국에서 재외국민의 참정권을 보장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이들이 국가에 대한 귀속감과 책임의식을 갖고 국가 발전에 동참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재외국민 참정권 부여는 우리 해외동포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내고 자신감을 회복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민족적 정체성에 대한 자신감은 재외국민이 당당하게 현지 주류 사회로 진출해 모국의 발전을 위해 더 크고 중요한 역할을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그동안 대한민국은 헌법상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인 재외국민의 선거권을 정치적 이유로 박탈해 왔다. 동포 사회에서 참정권을 부여해 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해 왔지만, 정치권이 당리당략과 정치적 계산에 빠져 이들의 요구를 철저하게 외면해 왔다. 헌법재판소가 이번에 위헌결정을 내렸는데도 막상 국회가 관련 법을 통과시키지 못해 동포들의 바람을 묵살하고 있어 그들을 또다시 실망시키지 않을까 심히 걱정된다.

 국민을 대표하는 대의기관인 국회가 재외국민에게 국민의 기본권인 선거권을 되찾아주는 일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헌법재판소 판결이 내려질 때까지 방치했다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데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에도 불구하고 조속히 관련 법을 개정하지 않고 있는 것은 국회의 직무유기다.

 국회는 하루 속히 헌법 정신에 맞게 공직선거법을 개정하고, 올해 17대 대통령선거부터 재외국민이 신성한 한 표를 행사하도록 해야 한다. 헌법재판소가 영주권자나 일시 체류자를 구분하지 않고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사람에게 투표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명확한 결정을 내린 상황에서, 더 이상 당리당략이나 정치적 계산에 따라 공직선거법을 개정하려 해서는 안 된다. 법률적으로 구분돼 있지도 않은데 일시 체류자니 장기 체류자니 해서 국민을 갈라 시차를 두고 투표권을 제한하는 것은 또다시 위헌적 상황을 방치하는 것이고, 헌재 판결에 역행하는 것이다. 국회는 재외국민의 조국에 대한 애정과 사랑을 한번만이라도 깊이 생각해보고, 그 뜨거운 열망을 가슴으로 끌어안아 하루 빨리 재외국민 참정권 관련 공직선거법을 개정해야 한다.

양창영 호서대 해외개발학과 교수·해외동포연구소장



반 대

의무는 없고 권리만 있나
국내 귀화인부터 챙겨야

  재외국민 참정권 허용 문제는 한두 해 늦게 실시해도 국익에 중대한 영향이 발생되지 않기 때문에 서둘 필요는 없다. 범위 문제도 한번 결정되면 두고두고 정권의 향배를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에 충분한 논의와 의견 수렴을 거쳐 결정해야 한다.

 다음과 같은 이유로 참정권은 국내에 주민등록이 있는 단기 체류 국민에게 우선하고, 영주권자에게 부여하는 문제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첫째 영주권자 자신들을 위해서다. 그동안 우리 정부가 온정주의에 입각해 재외국민을 계속 품 안에 안고 가려는 정책을 펼쳐온 결과 우리 교포는 해외에 살면서도 고국에 의존하려 하고 돈을 벌면 다시 국내로 회귀하려는 성향이 있다. 반면 일본 정부는 1900년 초부터 1970년까지 자국민 약 25여만 명을 브라질로 이주시킬 때 “다시는 일본 쪽을 돌아보지도 말고, 철저히 현지에서 뿌리 내리고 살아가야 한다”고 비정하게 보일 정도로 매몰찬 교민정책을 폈다. 그 후 일본 교민들은 이를 악물고 현지화에 몰입해 오늘날 규모가 100만여 명으로 늘고 브라질 경제를 좌우할 정도의 영향력 있는 집단으로 성장했다.

 둘째 권리 요구의 근거가 되는 의무 수행 수준에 있어 국내 거주 국민과 영주권자 사이에 형평성의 문제가 현저하다. 일반적으로 국민은 국가에 대해 의무는 적게 하고, 권리는 많이 누리려 한다. 그래서 의무 수행에 있어 국민 상호 간 형평성은 지켜져야 한다. 이민 간 영주권자는 병역의무를 면제받을 수 있고, 다른 영주권자도 입영의무가 면제되는 35세까지 연기하는 방법으로 면제 받을 수 있다. 납세 의무도 영주권자는 한국 정부가 아니라 거주국 정부에 지고 있다.

 셋째 우리나라의 경우 일제 식민지와 6·25 전쟁이란 독특한 비극적 역사를 겪으면서 전체 인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재외 영주권자들을 발생시켰다. 이들의 절대 다수가 미국·일본에 거주하며, 미·일과의 동맹을 중시하는 보수적 정치 성향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우리 영주권자 집단의 독특한 특성이 참정권 부여를 어렵게 만드는 또 다른 요인으로 작용한다. 50여만 표가 대선 향배를 결정짓는 우리나라의 정치공학적 구조 속에서 보수 세력이 아닌 기타 정치 세력은 이런 특성을 가진 영주권자에게 선뜻 참정권을 부여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넷째 탈냉전의 세계화 질서 속에서 국민 개념이 혈통주의에서 국적주의로 급속히 변해가는 세계적 흐름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저출산ㆍ인구 감소 현상은 외국인 체류자는 물론 귀화인을 새로운 국민으로 맞아들일 수밖에 없게 만들고 있다. 이제는 해외 동포의 참정권 보장 문제보다 우리 사회의 새로운 구성원이 된 국내 거주 외국인과 귀화인의 참정권 확대 문제에 우선순위를 둬야 할 시대다.

김수일 부산 외국어대 교수·국제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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