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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인수위 장단 달라/「개혁」 입안 혼선/중복추진 공겨루기 인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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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채널 여럿에 역할분담도 모호/다양한 의견 수렴 긍정측면도
김영삼차기대통령이 국정운영의 축으로 삼을 개혁정책 입안과정은 상당히 특이하다. 김 차기대통령이 정책입안의 임무를 어느 한곳에만 주지 않고 민자당정책위,대통령직 인수위원회,김 차기대통령의 사조직 등 여러곳에 부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 각 주체가 내놓은 정책이 사안에 따라 서로 엇갈려 혼선을 빚는 등 정책 입안과정이 비체계적이고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하지만 다양한 구상과 의견들이 개진되고 김 차기대통령이 이들 가운데 최선의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항후 국정운영상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어 바람직스럽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우선 개혁정책입안과정이 비조직적이라는 비판을 받을만한 대목이 적지않다. 특히 김 차기대통령이 지난 20일 대통령직 인수위에 부정부패 척결 및 경제활성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함에 따라 인수위와 민자당 정책위의 기능·역할 한계가 매우 모호해졌다. 때문에 양측은 서로 유사한 정책을 내놓거나 때론 엇갈리는 입장을 보여 혼란을 초래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예컨대 김 차기대통령의 공약사항인 부정방지위원회 신설과 관련해 인수위는 부정부패 척결의 실효성 확보를 위해 이 위원회에 조사권을 주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반면,정책위는 연구위주의 순수자문기구가 바람직하다고 반대하고 있다. 대사면문제에 있어서도 인수위측은 문민정부출범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해 일반사면을 검토해 볼만하다고 제안했으나 정책위에서는 일반사면은 법률적인 것은 물론이고 정치·사회적으로도 적지않은 문제가 있다며 특별사면을 고집하고 있다.
한편 경제활성화 방안마련은 인수위원의 전문성이 부족해 현실적으로 당과 인수위 겸직발령을 받은 전문위원의 손에 맡겨져 있는 셈이어서 정책위안과 거의 같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개혁정책입안과정이 비판받는 것은 겉으로 표출되는 비슷하거나 엇갈리는 정책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정책마련 주체들의 마음가짐이다. 이들이 비슷한 일을 하는 상대방을 얕보지 않고 각자의 지혜를 짜내는 데만 몰두한다면 아무 탈없을텐데 그렇지 못한 것 같다. 또 새로 부여된 임무가 능력과 힘에 겨워도 진중하고 차분하게 중지를 모은다면 적어도 어설픈 작품생산은 피할 수 있을텐데 마치 충성경쟁하듯 조급히 아이디어를 양산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민자당은 지난 20일 김 차기대통령에 대한 인수위의 정부 업무현황 보고가 마무리되자 『인수위의 임무는 사실상 종결됐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김 차기대통령이 인수위에 부정부패 방지와 경제활성화 방안강구를 지시하자 당측은 머쓱해진 반면 인수위원들은 『우리의 활동이 끝났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크게 당황할 것』이라고 의기양양해 했다.
당초 인수위출범때부터 그 역할과 한계에 대해 갈등양상을 노출했던 양측이 이제 하는 일이 서로 겹치게 되었으니 경쟁이 한층 치열해지는 느낌이다. 사실 당에서는 인수위를 겨냥,『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무슨 쓸만한 정책이 나오겠느냐』고 깔보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인수위측은 『우리는 김 차기대통령에게 특히 상징적일 수 있는 정책을 입안할 것이므로 공약이나 다듬는 당정책위와는 차별성이 있다』고 자신만만해 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탓인지 서로 서둘러 아이디어를 내놓거나 상대방의 김을 빼는 작전을 구사하고 있어 과연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자아내기도 한다. 인수위가 제기한 공휴일 축소문제는 일부 여론을 즉각 반영한 측면도 있지만 다소 성급하게 결론을 내린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적지않다. 즉 이 문제는 공청회 등을 통해 노사 등 각계의 의견을 들어보고 신중하게 결정할 사안인데 인수위가 단한번의 토론으로 이러쿵 저러쿵 하겠다고 하는 것은 전시적인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한편 당정책위가 28일 김 차기대통령에게 보고한 경제공약 실천방안은 인수위가 제시할 경제활성화 방안의 김빼기용이라는 지적도 있다. 정책위는 당초 93년도 경제운용계획 보완,우루과이라운드(UR) 대책 등 우선순위 차원에서 골라놓았던 경제부문 10대 과제에 살을 붙여 보고할 방침이었으나 실제로는 경제활성화대책 위주로만 보고해 특히 인수위측으로부터 『우리는 뭘 보고하란 말이냐』는 불만을 사고 있다.
○…당과 인수위가 이처럼 궁합이 맞지 않는데에는 김 차기대통령의 책임도 있다. 즉 애초부터 양측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지어 주었다면 잡음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특히 인수위의 기능과 한계를 분명히 하지 않은채 그때 그때 임무를 부여하는 식으로 운영,인수위원들은 과제에 대한 충분한 예비지식이나 연구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일정을 잡아가기 바쁜 실정이다.
그러나 김 차기대통령의 측근들은 이같은 방식의 개혁정책입안과 관련,『YS는 일부러 여러 채널에 개혁안을 검토하도록 지시했다. 그는 이곳에서 나올 개혁안들의 장단점을 비교하고 보완한뒤 최선의 방책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정책 입안과정에서 나타날 약간의 잡음에 대해서는 그다지 괘념치 않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김 차기대통령이 훌륭한 집을 짓기 위해 많은 목수를 동원한 취지는 좋으나 자칫 지휘·감독과 판단을 잘못할 경우 오히려 「목수많은 집이 기울어진다」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유념해야 한다는 지적이다.<이상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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