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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흥돋운 「법원음악회」(촛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26일 오후 4시 서울 서초동 법원청사 1층 강당에서는 난데없이 「흥겨운 우리가락」이 흘러나왔다.
법전과 사건기록에 함몰돼 자칫하면 따뜻한 인간미마저 잃어버릴 법관들에게 음악을 통해 부드러운 심정을 불어넣어주기 위해 마련된 「국립국악원 초청 한국의 전통음악공연」. 기왕이면 「겨레의 혼」을 찾자는 법원간부들의 뜻에 따라 서양음악이 아닌 국악이 채택됐다.
이영모 서울고법원장을 비롯,3백여명의 법관·직원들은 지난 30분전부터 모여앉아 사상초유의 「법원음악회」를 호기심어린 기대속에 기다렸다.
1시간반 가량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판사 청중들은 그동안의 「문화적 갈증」이 한꺼번에 풀리는듯 어깨를 들썩이며 마냥 흥겨워했다.
눈부시게 고운 흰 한복차림을 한 고영숙씨의 「살풀이」가 펼쳐지자 판사들은 단아한 춤사위에 숨죽이며 정적의 미에 흠뻑 젖었고,인간문화재 김일구씨의 판소리 흥부가 순서에서는 소리꾼의 흐드러진 너스레에 객석 곳곳에서 『잘한다』『얼씨구』 등의 추임새와 함께 박장대소가 터져나왔다.
새해 첫공연을 법원에서 맞게된 국악원측은 「올바름을 널리 펴 보인다」는 뜻의 「표정만방지곡」을 첫 곡으로 삼는 등 나름대로 선곡에 세심한 신경을 썼다.
청중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사이사이 국악원 학예연구사 윤명원씨의 상세한 해설이 곁들여지기도 했다.
『우리가락의 멋과 흥으로 메말라진 정서가 조금이나마 채워진 기분입니다』 서울고법 이선희판사(여·43)는 『법관들이 인간미를 잃지 않고 그에 바탕한 판결을 내릴 수 있도록 이런 기회가 자주 있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차갑기만한 법관들의 마음에도 예술의 향기가 스며들어 보다 인간적인 법원으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된다면 얼마나 좋은 일일까.<예영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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