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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동경 브리지스톤|일본 근대 그림의 진열장|김윤식<서울대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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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14면

동경 역의 동쪽 입구를 나서면 교바시·니혼바시 중간 지점쯤에 거대한 브리지스톤 빌딩(중앙구)이 보이며 그 2층이 브리지스톤 미술관이다. 긴자 일정목이 있는 이른바 동경의 중심부라고나 할까.
대 은행가 이시바시 세이자부로가 1962년에 창설한 이 미술관에는 앵그르·르누아르·고흐 등 인상파의 작품을 비롯해, 마티스·피카소 등 현대 그림과 로댕·부르델·자코메티·무어 등의 조각들이 소장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모네의『수련』, 세잔의『생빅토르산』이 유명하다. 세잔은 자기의 고향에 있는 생빅토르 만을 40여 점 그렸는데, 여기에 소장된 것은 그 중의 하나다.
이러한 근대 서양의 작품 수집도 그 나름의 의미가 있으며, 이 점에서 보면 재벌이었던 마쓰카타 고지로의 생애에 걸친 수집 품을 중심으로 창설된 서양미술관과 크게 다를 바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브리지스톤 미술관이 지닌 특징이자 최대의 매력은 일본 근대화가들의 중요 작품수집이라 할 것이다. 이른바 외광파로 불린 초창기의 일본 근대화가들의 작품을 손쉽게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미술관이라 할 수 있다.
일본 근대그림의 개척자인 구로다 사이키를 비롯해 후지시마 다케지, 아사이추, 기시다 류세이, 사에키 유조 등의 그림들이야말로 이 미술관의 자랑이라 할 것이다.
문외한인 내가 이 미술관에 자주 들른 것은『이광수와 그의 시대』『김동인 연구』를 위해 자료조사차 일본에 머무르던 70, 80년 두 차례였다.
이광수의 전기적 연구라면 그가 중학시대부터 배운 일본의 당시 문화적 배경과 그 속에서의 유학생들의 문화감각을 살펴야 했는데, 의외에도 근대그림과 문학의 관계가 밀착돼 있음이 발견되었던 것이다.
조선이 낳은 천재적 화가 김관호(동경미술학교)에 대한 이광수의 흥분된 기록을 접할 수 있었음은 물론 정작 우리 근대소설의 초석을 놓은 김동인이 미술학교(천단화학교)를 다녔을 뿐만 아니라『창조』파의 김 환·김찬영 등도 그러하지 않겠는가. 특히『창조』파의 두목 격인 김동인의 소설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후지시마 다케지(1905∼43)의 그림을 보지 않으면 안되었다. 김동인 자신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았겠는가.『당시 천단화 학교에 적을 두고 등도씨 문하에서 미학에 대한 방식을 구하러 다닌 여는…』라고.
김동인이 그토록 몰두했던 후지시마의 그림을 나는 자주 보러 다녔다. 그 중에서도『검은 부채』(1908∼9)는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하얀 면사포를 쓴 검은머리, 파란 눈, 우뚝한 코의 이 상반신 여인이 오른손으로 검은 부채를 펴 가슴을 가리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이 서양인의 그것이었음은 새삼 말할 것도 없다. 서양미인의 초상화, 그것에 김동인도 반했던 것일까. @@김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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