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돌아온 김홍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김홍신씨가 역사 대하소설 『대발해』를 발표했다. 발해 관련 서적으로 가득한 서초동 자택에서 그를 만났다. [사진=김태성 기자]

김홍신(60). 한동안 잊고 지냈던 이름이다. 『인간시장』 장총찬의 신화 위로, 단식투쟁을 벌이던 국회의원 시절 그의 모습이 겹쳐진다. ‘공업용 미싱’ 발언으로 홍역을 치렀던 건 벌써 십 년 전 일이다.

 2004년 총선에서 득표율 0.7%P 차이로 떨어진 뒤 두문불출 3년. 김홍신은 소설가로 돌아와 있었다. 겨우 책 한 권 내놨다면 그런가 보다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귀환은 격이 달랐다. 200자 원고지 1만2000장을 한꺼번에 발표했다. 10권짜리 대하소설을 전작 완결한 것이다. 이로써 지난 3년을 둘러싼 궁금증은 모두 풀렸다. 오로지 글을 쓰며, 아니 글에 매달리며 앙버텨낸 세월이었다.

 김홍신 역사소설 『대발해』(아리샘)는 다음주 서점에 나올 예정이다. 이번에 4권까지, 이어 일주일 뒤에 나머지 6권이 출간된다. 막 최종 교정원고를 넘긴 김홍신은, 생각했던 것보다 왜소했고 또 지쳐 보였다.

▶건강이 안 좋아 보인다.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하루에 12시간씩 글을 썼다. 햇볕을 안 봐서 피부병에 걸렸고 손으로 쓰다 보니 손목부터 어깨까지 통증에 시달렸다. 진통제 주사를 맞으며 버텼다. 결석도 생겼고, 지금도 불면증을 겪고 있다.”

▶젊은 작가도 12시간씩은 못 쓴다. 하물며 선생은 내년에 환갑이다.

 “어떤 책임감이 나를 이끌었다. 중국의 동북공정을 지켜보면서 발해사를 어떻게든 빨리 복원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무모한 건 무모한 거다.

 “내 몸에 늘 긴장을 불어넣어야 했다. 그래야 유혹에 약해지지 않을 수 있었다. 나는 글을 써야만 한다.”

▶유혹이라면 정치권의 손짓을 말하는 건가.
 
“여러 번 제의를 받았다. 2년 전엔 청와대에서 장관급 자리를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바로 거절했다.”(※김홍신의 정계 복귀설은 수시로 돌았다. 서울시장 출마설, 보건복지부 장관설, 충남 공주 보궐선거 출마설도 있었다.)

▶왜 거절했나. 선생은 정치도 잘했지 않았나.
 
“정치에 몸을 뒀을 때도 나는 문학으로 돌아가야 할 때를 생각했다. 내가 정치에 입문한 건 원래 내 의사가 아니었다. 시민운동을 벌이던 90년대 초, 몇몇 원로가 나에게 정계 진출을 권유했다. 내가 다시 문학으로, 그리고 시민운동으로 돌아갔을 때 나는, 나를 응원했던 그 분들이 환영할 만한 사람이 되어 있어야 했다.”

▶그런데 2004년 총선엔 왜 출마했나. 그땐 부인의 건강도 나빴다.

 “지금도 당시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아내는 이미 산소 호흡기에 생명을 의존하던 상태였다. 하지만 당시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의 뜻이 워낙 간곡했다. 난 의식 없는 아내에게 어떻게 해야할 지를 물었다. 그때 갑자기 아내가 눈을 떴다 감았다. 아내가 승낙한 거라고, 나는 믿었다.”(※그의 아내는 그가 선거운동을 벌이던 2004년 4월 숨진다. 그는 열흘간 선거운동을 멈추고 아내가 마지막 가는 길을 돌봤다.)

▶아픈 기억을 되새기게 했다. 죄송하다. 작품 얘기를 하자. 왜 발해인가.
 
“발해사 260년이 중국 변방사로 전락하는 조짐을 난 91년부터 지켜보고 있었다. 발해사를 복원하는 건 나에게 사명과도 같은 것이다.”(※여기서 그의 서재 풍경을 묘사한다. 발해사 관련 서적만 얼추 200권이 쌓여 있고, 각종 자료가 책상 위 아래에 허다했다. 책장엔 손수 작성한 연표와 손수 그린 발해 지도가 붙어 있었다. 몰래 가져온 깨진 기왓장 몇 점도 보였다. 그는 “원체 자료가 없어 왕의 나이를 정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소설엔 약 400명이 등장한다.)

▶요즘 역사소설이 유독 인기다. 김홍신 역사소설이 다른 역사소설과 다른 게 있다면.
 
“북한이 이대로 무너지면 북한 땅은 중국 영토가 되고 만다. 북한 돕기 운동과 만주벌판을 호령했던 발해를 되살리는 건 같은 개념이다. 중국은 발해사를 말갈족 역사로 왜곡하고 있다. 중국 지도에서 해마다 발해 영토가 줄어든 것을 알 수 있었다. 한국인이 이 소설에서, 아니 웅혼한 발해인의 기백에서 우리네 특유의 흥을 되살리길 바란다.”

▶문학으로 돌아온 걸 환영한다. 그래도 여전히 개운치 않다. 정치, 정말 안 할 건가.
 
“면전에서 곧은 소리나 하는 나를 누가 받아주겠나. 통이 정말 크지 않으면 나 같은 사람은 거두지 못할 것이다.”
 
인터뷰 중간에 그는 중국의 사마천 얘기를 꺼냈다. 사마천은 궁형(宮刑)을 받은 뒤 비로소 『사기(史記)』를 쓸 수 있었다. 사마천이 그토록 『사기』에 매달렸던 건, 고통을 잊기 위해서였을 수 있다. 김홍신의 놀라운 열정 또한 아마 다르지 않을 것이다. 

손민호 기자<ploveson@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김홍신은=1947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났다. 81년 발표한 장편소설 『인간시장』이 국내 최초로 밀리언 셀러(100만 부 판매)를 기록했다. 96년부터 2003년까지 15·16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이 8년 동안 의정평가 1위를 놓치지 않았다. 2004년 열린우리당 후보로 종로 지역구에 출마했다가 500여 표 차이로 한나라당 박진 의원에게 밀렸다. 소설 30편 등 100여 권의 저서를 펴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