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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프랑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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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샹젤리제의 루이뷔통 매장 건물은 문화공간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일요일에 장사해도 된다."

세계 최대의 명품 그룹인 프랑스의 LVMH가 최근 항소심 재판에서 이런 판결을 받아냈다. 일요일 영업은 절대 안 된다며 딴죽을 걸던 강성 노조는 머쓱해졌다. 5월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사회적으로 일고 있는 '일하는 프랑스'와 맥을 같이하는 판결이다.

LVMH와 기독교계 노조단체인 CFTC가 부닥친 건 지난해 4월. 루이뷔통 샹젤리제 매장이 일요일 영업을 시작한 직후다. LVMH는 샹젤리제점이 파리 특별관광구역 내에 위치한 문화시설이라며 일요일에도 문을 열었다. 그러자 노조가 반발했다.

프랑스에서 일요일 영업은 원칙적으로 불법이지만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파리 시내의 식당과 담배 가게.박물관은 예외 적용을 받고 있다. 여기에다 시내 7개 관광구역에 있는 가게들은 매장에 문화나 레크리에이션.스포츠 시설을 추가해 정해진 조건을 충족하면 일요일 영업 특별허가를 받고 있다.

LVMH는 이런 점에 착안해 매장 건물을 지을 때 옥상에 예술품 전시 시설을 마련했다. 전체 매장 1900㎡ 가운데 20%가 넘는 400㎡를 문화공간으로 꾸몄다. 회사 측은 이 점을 내세워 관광구역 내의 문화시설로 당국의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CFTC는 "매장의 문화공간은 눈속임에 불과하다"며 "미술관만 운영한다면 몰라도 일요일에 지갑이나 가방을 파는 것은 불법 영업"이라고 맞섰다. 결국 노조는 파리 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5월 "루이뷔통 샹젤리제점의 일요 영업은 불법이므로 더 이상 장사해서는 안 된다"고 판결했다.

LVMH는 판결에 불복해 바로 항소했다. 동시에 일요 영업금지 결정에 대한 결정 유예 가처분 신청도 냈다. 항소심에서 LVMH는 건물 안에 예술품 전시장이 있다는 점과 함께 매장 자체가 문화공간이라는 점을 강력히 주장했다. 실제로 샹젤리제 매장은 건설 당시부터 유명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이 다수 참여하면서 화제가 됐다. 파리의 유명 건축학교나 디자인스쿨 학생들이 현장 실습을 나가는 곳이기도 하다. 회사 측은 루이뷔통이 명품의 나라 프랑스의 예술성과 장인정신을 상징하는 상표라는 점도 강조했다.

이런 논리가 결국 항소심 재판부를 움직였다. 미술품 전시실은 물론 상품 매장도 문화공간으로 볼 수 있다며 일요일 영업을 허락한 것이다. 패소한 CFTC 측은 반발하고 있다. "일요 휴무라는 대원칙이 무너져서는 안 된다"며 "다른 노조 단체와 연대해 이를 지켜내기 위해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파리=전진배 특파원

◆LVMH=루이뷔통 모에 에네시(LOUIS VUITTON MOET HENESSY)의 약자. 프랑스인 베르나르 아르노가 최대주주인 세계적인 명품 그룹이다. 지갑과 가방으로 유명한 루이뷔통을 비롯한 셀린.지방시.펜디.겐조 등 패션 브랜드와 디오르.게를랑 등 화장품, 그리고 모에 샹동 등 주류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150억 유로(약 18조7600억원)에 달했다. 얼마 전부터 프랑스 최대 경제신문인 '레 제코' 인수작업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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