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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ily어린이책] 열다섯 살, 끝내 해낸 ‘미션 임파서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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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

정유정 지음, 비룡소, 396쪽, 9500원,
중학생 이상

대단한 입심이다. 뒷얘기가 궁금해 눈을 떼기 어렵다. 소리 내 웃기도 여러 번이다.

 시작이 열다섯 살 소년 준호의 엄마 결혼식 장면이라고 해서 ‘또 재혼 가정의 갈등과 화해?’라고 지레짐작해서는 안 된다. 수배당한 친구 형이 해외로 도피할 수 있도록 여권과 돈을 전달해야 하는 준호. 그 임무를 수행하며 겪는 모험담이 소설의 기본 줄거리다.

 배경은 1986년. 그해 태어난 아이들이 지난해 성인식을 치렀을 테니, 주 독자층 중ㆍ고생에게는 정말 옛날 얘기다.

 제1회 세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인 이 책의 미덕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재미다. 배경은 암울하다. 8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도 그렇고, 등장인물들의 형편도 모두 딱하다. 광주민주화운동 때 실종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준호,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정아, 부모의 과보호에 진저리치는 승주,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던 할아버지…. 이들의 속내를 유머 속에 담아내는 작가의 재치 있는 시선이 돋보인다.

 맛보기 하나. 청소년 성장소설에 빠질 수 없는 사랑 얘기에서 찾는다.

 “정아는 긴장하고 있었으나 내 손을 걷어내지는 않았다. 볼을 감싸고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도 피하지 않았다… 그 중차대한 순간에 마음속의 목소리가 촉새처럼 초를 쳤다. 정지, 일단 정지! 네 입을 새로운 곳에 써먹고 싶다는 욕구는 인정해. 너라고 밥 먹고 말하는 데만 쓰라고 입이 달렸겠어? 그래도 생각좀 해봐. 정아가 예뻐서, 입술이 거기 있으니까, 깃발은 꽂으라고 있는 거다. 그런 원초적 이유 말고, 보다 이성적이고 건전하고 신성한 명분을 찾아봐. 찾아봤다. 찾다 짜증이 났다.”(244쪽)
 글만 감칠맛 나는 게 아니다. 줄거리도 재미있다.

 무인도에서 발견된 아이들은 둘러댈 핑계를 미리 만들어 뒀다. 몰려든 기자들. “카메라를 들이대며 모자를 벗으라, 얼굴을 들라 요구하고 더 크게 말하라, 빨리 대답하라 고함치고 은행 강도라도 대하듯 윽박을 질러댔다.”(370쪽) 그렇게 난리를 치고도 깜빡 속는다. “그래, 그 고생을 해서 안개섬에 갔는데 고래를 보긴 봤니?” 책 속에선 “아뇨”란 아이들의 대답에 어른들이 웃지만, 짜릿한 재미는 독자들이 본다.
 두 번째 미덕은 모험 이야기라는 점읻이다. 학교와 가정 등 자기 생활 주변의 제한된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국내 청소년 소설의 한계를 과감히 깼다. 평론가 원종찬 인하대 교수는 “공상으로 만들어 낸 모험이 아니라 역사적 현실을 바탕으로 한 모험담이어서 더욱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세 아이와 누군지 모를 할아버지, 그리고 도베르만 종 개 루스벨트는 엉겁결에 동행자가 됐다. 서울에서 남도까지 산과 들과 바다로 종횡무진 내달리는 동안 조마조마한 수난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인생도 그렇게 예기치 않은 모험의 바다 아니던가. 나흘간의 모험을 마치면서 아이들은 어른의 세계로 한 발 문턱을 넘는다. 열 다섯. 꼭 그럴 나이다.

 이지영 기자

◆저자 한마디=“‘만약, 우리 인생에도 스프링 캠프가 있다면’을 화두로 놓고 얘기를 풀었다. 10대는 온몸이 열정으로 들끓는 시기다. 우리 청소년들도 주인공 세 아이들처럼 인생의 본게임 전에 겪을 수 있는 모험과 여정을 몸으로 세상에 부딪치며 경험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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