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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마무리 잘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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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6월 30일 한국과 미국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정식 서명했다. 지난해 2월 협상을 시작, 올해 4월 2월 타결된 한·미 FTA는 추가 협상까지 마무리해 양국 정부 간의 협상 절차는 모두 마쳤다.

 그간 한·미 양국은 크고 작은 난관에 봉착했지만 강력한 리더십과 능숙한 협상으로 고비를 넘겼다. 의약품·개성공단·소고기·무역구제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쟁점들이 돌출될 때마다 협상이 삐걱거리는 듯했다. 미국의 밀어붙이기식 일방적인 통상 공세와 국내시장 보호에 급급한 전통적인 한국의 통상협상 방식이 반복됐다면 협상은 일찌감치 좌초했을 것이다. 

 미국은 자신의 이해관계만을 끝까지 고집하지 않고 한 발짝 물러나는 성숙함으로, 한국은 미국과의 FTA를 계기로 ‘경쟁과 개방’으로 한국 경제의 체질을 혁신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협상의 난관을 극복해 나갈 수 있었다. 양국이 한·미 FTA를 무역과 투자를 확대하는 기회인 동시에 동북아의 경제안보를 확보하는 교두보로 삼겠다는 ‘성숙한 동반자적 관계’의 공감대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4월 2일 협상 타결 이후 협정문을 두고 면밀한 검증작업이 있었다. 양국의 비교우위를 반영하면서 서로의 민감성을 존중하는 결과를 도출해 균형을 이룬 ‘중상급 FTA’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이다. 추가 협상에서도 이러한 균형의 원칙은 견지됐다.

 양국의 대외협상이 마무리된 이 시점에서 이제 공은 양국의 정치권으로 넘어왔다. 한국 국회와 미국 의회의 비준동의를 받아야만 한·미 FTA는 효력을 발생하게 된다. 하지만 양국 정치권의 상황이 낙관을 불허한다. 올 12월 대선을 앞두고 여당은 해체 수순을 밟고 있고, 제1당이 된 한나라당이 과연 비준동의에 적극적일지도 의문이다. 내년에 대선을 치르는 미국은 일부 예비 후보가 반FTA 성향을 드러내고 있고, 민주당 하원 지도부 4인이 반대성명을 발표하는 등 반FTA 기류가 심상치 않다.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은 한·미 FTA의 비준에 이르기까지 다시 한번 정치적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미국 정치권의 반발은 주로 자동차와 소고기 관련 이해관계 때문이다. 이번 추가 협상에서 이들 분야가 논의되지 않은 데 대한 반발이기도 하지만, 선거구민만을 의식한 지극히 무책임한 정치 행태다. 왜냐하면 민주당이 장악한 의회가 공화당 행정부와 합의한 신통상정책에 이들 분야를 포함시킬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면 기회는 지나간 것이기 때문이다.

 양국의 정치 일정을 볼 때 올가을에 비준 절차를 완료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필자가 주도한 통상 전공 교수 30인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압도적인 다수가 대선 전에 비준하는 것이 옳다는 의견을 표시했다.

 대선이 지나면 내년 4월 총선이 다가오는데, 차기 대통령이 확정된 상태에서 퇴임하는 대통령이 국회의원들을 설득해 비준동의를 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내년 4월 총선이 끝나고 정치권의 전열이 재정비된 상태에서 비준을 추진할 수도 있지만 이때 미국이 본격적인 대선 정국으로 돌입한다는 부담을 안게 된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한·미 FTA 비준이 2009년까지 지연될 수도 있다. 관세 인하와 비관세 장벽 제거 혜택은 서류 위에서 잠들게 된다.

 한국 정부는 부처 간 합의를 거쳐 6월 말 보완 대책을 발표했다. 한·칠레 FTA 비준 과정에서 경험했듯 예상되는 피해를 지나치게 과장한 퍼붓기식 보상은 지양해야 한다. 납세자인 국민은 이미 학습효과를 통해 생산자만을 의식한 정치권의 과보호 행태에 비판적이라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한·미 FTA가 조기 비준될 수 있도록 정치인들을 지도·편달하는 것은 전문가들과 소비자들의 몫이다. 이제 이들이 적극적으로 나설 때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