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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업무자동화와 여가문화|백형기<한국정보문화센터 본부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유럽이나 미국·일본의 직장인들은 대부분 1주일에 5일만 근무한다. 2000년대에는 주당 3.5일∼4일 근무시대에 들어간다는 계획도 세워 놓고 있다.
이린 추세는 국가나 회사들이 복지차원에서 선심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 보급이 늘고 업무가 자동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대신 직장마다 지적·창조적 업무 비중이 커지면서 근로자중에는 정신적 부담감에 시달리는 사람이 늘고 있다. 정신작업이란 두부 모 자르듯 출근에 맞춰 시작되고 퇴근과 동시에 끝나는 일이 거의 없다. 정작 근무시간 중에는 막막하던 해결방안이 잠잘 때쯤에야 홀연히 떠오르는 것이 지적업무다. 가정과 직장의 공간적 구분도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그래서 스트레스라는 정신적 긴장감에 쫓기면서 살아가는 현대의 직장인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구미사회에서는 한 두 달의 장기 휴가가 일반화되어 있고 직장 역시 이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사회가 고도화·정보 화되어 갈수록 여가는 더 이상 육체의 휴식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제 여가란 일에서 풀려나 정신적 해방감을 만끽하는 자유시간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됐다. 창조력을 배양시키는 재충전 기간으로서의 의미도 커지고 있다. 또 두뇌 지향적 창조업무일수록 여가는 생산성향상에 결정적 영향을 준다.
우리나라도 이런 첨단기술사회의 풍조가 퍼져 가면서 주위환경도 많이 변하고 있다.
외국의 유행에 따라 레저산업도 눈에 띄게 활성화되고 있다. 전국 곳곳에 대형스키장·눈썰매장이 건설되고, 골프장·리조트 등 복합 위락시설들이 다퉈 건설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아직도 여가란 단순히「노는 시간」이라는 물리적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외국에서 살다 온 어느 교포는 주말 서울근교의 교통난을 이렇게 평했다.
『주말이 되면 미국 도시근교의 거리는 놀랄 만큼 한산하다. 그러나 서울의 주말은 외곽일수록 엄청난 차량으로 종일 붐 빈다. 그 이유는 아마 한국인에겐 타고난 한량 끼가 있어 주말에도 뻗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아니면 한국의 직장인들은 근무시간이 줄어드는 정보사회의 외형만을 열심히 즐기고 질적·정신적으로 변화된 업무를 체질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사회는 지금 어느 쪽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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