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벗었지만 당내불씨 여전/정 대표와 국민당 앞으로의 향방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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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사업가다운 방어적 전략 선택/기금갈등 내연속 당운영 동면
연초부터 시작된 이른바 「정주영정국」은 일단락될듯 하다. 14대 대선이후 좋은 의미든,나쁜 의미든 정가의 관심을 끊임없이 모았던 정주영 국민당대표가 검찰에 출두하고 이어 미국으로 떠나기 때문이다.
정 대표의 출국으로 그의 거듭돼온 실수와 도덕성 훼손시비 역시 당분간 잠잠해질듯 하다. 이제 국민당에는 내연의 핵인 「정치발전기금 2천억원 조성」문제만 남은 셈이다.
일단 정 대표의 검찰출두는 「정 대표다운 결정」이었으며,정 대표 자신의 결단에 의한 것이었다. 정 대표는 비밀출국 시도가 실패한후 정부당국의 의지를 「난공불락」으로 판단한 듯 하다. 정 대표는 14일 오후 「출국금지 항의단」이 이정우 법무장관을 만나고 온뒤 「선출두 후출국」 형식으로 출국금지해제가 보장될 것이라는 보고를 받고 「전격출두」를 결심했다는 후문이다.
정 대표는 이날 밤 소속의원 몇사람들에게 「출두」의사를 비쳤으며,다음날인 15일 아침 최고위원들을 출근 하는대로 집무실로 불러 「출두결심」을 통보했다.
물론 대다수 최고위원들은 명분에 따라 「야당탄압」과 「소환불응」을 강력 주장하며 반대했으나 결국은 양해할 수 밖에 없었다.
정 대표의 잦은 변신을 사후 합리화 해주기에 바빴던 최고위원들은 오히려 『악법도 법』『정국전환의 계기로 삼자』고 정 대표에게 또다시 퇴로를 열어 주었다.
이들은 당초 정 대표의 마음을 잘못 읽은 것이다. 정 대표는 대다수 최고위원들이 주장하는 「야당식 해결방안」과는 거리가 먼 체질이다. 정 대표는 대선패배후 김영삼차기대통령에게 면담을 신청한데 대해 『승자에게는 승자의 처신이,패자에게는 패자의 처신이 있다』며 「굴욕」이 아니라 「당연한 관용요청」이라 자평했다. 권력의 생리를 사업가의 입장에서 터득한 그는 강한 권력의지앞에 숙이고 들어가는 나름의 생존철학을 가지고 있다. 정 대표는 더이상 잃을 것이 없는 야당투사가 아니라 여전히 국내 최대재벌의 실소유자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철학에서 나온 정 대표의 처신은 소극적·방어적일 수 밖에 없다. 가장 효율적 방안으로 판단한 것이 「출국」인 셈이다.
정 대표는 일단 클린턴취임식 공식참가단과 함께 취임식에 참석한뒤 개별적으로 행동할 것으로 알려졌다.
측근들은 정 대표가 미국에 잠시 더 머무르다 일본의 벳푸온천에서 휴식한뒤 2월초 귀국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확실치는 않다.
정 대표 없는 국민당의 독자운항은 기대하기 힘들어 보인다. 대부분 당직자들도 인정하듯 국민당은 아직 「공당화」가 안된 정 대표의 사당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일단 당무진행에 필요한 사회봉은 「대표부재시 최연장 최고위원이 대행」이라는 당헌에 따라 양순직최고위원이 잡게된다.
하지만 정 대표의 정리방침에 따라 전 지구당이 활동중단 상태며,중앙당은 잔류한 현대맨 중심으로 잔무처리상태이기에 실질적인 당운영은 힘들 수 밖에 없다.
남은 문제는 「기금」을 둘러싼 내연이다. 사회봉을 잡게된 양 최고위원 자신부터 『당이 살아남기 위한 공당화방안으로 기금조성이 돼야한다』고 약속이행을 강조한다. 『정 대표가 외유에서 돌아오면 이 부분은 반드시 명백하게 정리돼야 한다』며 정 대표 귀국후 결단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다른 대부분의 의원들 역시 「2천억원의 당장 출연」은 아니지만 어떤 형식이든 이행을 요구하기는 마찬가지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창당파와 입당파의 이해가 일치한다.
반면 「정국전환=공세국면」으로의 기대는 쉽지않아 보인다. 임시국회소집을 요구하고 있지만 상대인 민자당이 별 뜻이 없다. 힘을 합해야할 민주당도 김대중대표의 은퇴후 당체제정비문제로 여력이 없다.
더욱이 정 대표의 출두로 소환정국은 끝났지만 검찰의 불구속기소방침에 따라 정 대표는 여전히 사법처리과정의 선상에 놓여있다. 정 대표가 의원직까지 박탈당할 수도 있는 멍에를 짊어진 상태에서 행보가 자유롭기는 힘들 수 밖에 없다.
결국 정 대표 없는 국민당은 내연하는 가운데 외부적으로는 동면상태에 머물듯 하다.<오병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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