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이하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송구영신, 또 한번 새해를 맞이한다. 축에 몰리듯 바쁘게 쫓기다 보니 어느새 한해가 지나갔다.
금년에는 모든 분야가 두루 잘 풀려 사회전체에 웃음꽃이 피었으면 좋겠다. 애기가 여러분께 세배부터 드린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기력도 크게 진보하소서.』
곧 응씨배·진로배·SBS최강 전·동양증권배 등 세계대회가 속속 열리고, 봄에는 또 하나의 세계기전인 후지쓰배가 개최된다. 왕위전을 비롯해 배달왕기전등 15개 국내기전도 열전에 돌입하게 된다.
따라서 금년 바둑계는 그 어느 때보다 화제가 풍부할 것이 예상된다.
작년 말에는 국내기전인 기왕전에서 숙적 조훈현9단과 서봉수9단이 5번 승부로 타이틀을 다툰 결과 조9단이 스트레이트 3연승으로 방어에 성공했다.
한편 서 9단은 4년 연속 기왕 타이틀에 도전해 집념을 불태웠으나 역시 무위로 끝나고 말았다.
서 9단은 92년 들어 대 조훈현 전에서 6승2패를 기록하면서 국기 위를 방어하고 응씨배 결승에 진출하는 등의 상승세로 기대를 모았으나 압승을 거의 굳혔던 제1국을 끝내기 단계에서 어이없이 자명(초읽기에 몰리고 있었음) 하더니 제2국까지 역전패 당하는 난조를 보였다. 이로써 조-서의 92년 전적은 6승5패(서의 입장)로 호각지세.
사소취대란 기훈 처럼 서 9단이 응씨배에서는 기필코 우승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일본에서는 68세의 노장 후지사와 슈코 9단이 고바야시 고이치 9단의 도전을 물리치고 왕좌타이틀을 지켜 조로 현상을 보이고 있는 중견기사들에게 커다란 자극제가 되었다.
67세의 타이틀 쟁취도 놀랍거늘 68세에 방어까지 하다니 존숭의 염마저 든다.
린하이펑(임해봉) 9단도 야마시로 치로시 9단의 도전을 뿌리치고 천원위를 유지했다. 린하이펑은 50이 넘었지만 여전히 건재하다.
야마시로는 한때 일분 바둑계에서 세계10강으로 꼽아 주던 인물이기도 한데 본인 방 2회, 기성전 1회를 포함해 준우승만 4회를 기록하고 있는 비운의 주인공이다. 91년 일본 최대규모의 기성타이틀에 도전해 고바야시 9단을 그로기 상태로 몰아넣고서도 결정적 고비마다 실족, 3승4패로 무릎을 끓었었다.
특히 제7국은 필승의 상황에서 실 착을 거듭한 끝에 반 집 차로 역전패 당함으로써「5억 원 짜리 반집 승부」의 화제를 뿌리며 한동안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슬럼프에 허덕여야만 했다.
「우승을 해본 사람이 우승한다」는 승부세계의 통설처럼 결승에서 지기만 하는 야마시로가 그 한 맺힌 멍에를 벗어날 날은 언제일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