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경 국회…저무는 2003] 올해 넘기는 FTA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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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의 연내 비준이 끝내 무산됐다. 국회는 30일 본회의에서 FTA 비준동의안을 처리하려 했으나 각 당 농촌 출신 의원들이 물리력으로 표결을 저지한 때문이다.

오후 6시10분. 박관용 국회의장이 비준안을 상정하자 의석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어 통외통위 한나라당 간사인 조웅규 의원이 상임위 심사보고서를 읽어 내려가자 한나라당 박희태.정병국, 민주당 이정일, 자민련 이인제.정진석 의원 등 30여명의 의원이 우르르 단상으로 몰려나왔다. 한나라당 이규택 의원은 曺의원을 옆으로 밀쳤고, 민주당 김옥두 의원은 마이크를 잡아챘다.

朴의장은 "왜 이리 당당하지 못하나. 떳떳하게 반대 토론을 하라"고 설득했지만 의원들은 막무가내였다. "농민들 동의부터 받아오라고 그래"(이해구 의원), "농민들 피눈물을 닦아주지는 못할망정 이게 뭐하는 거야"(박종희 의원)는 등의 고성이 오갔다.

朴의장은 정회를 선포하고 4당 총무들과 의장석 옆에서 구수회의를 했다. 그리고 5분 뒤 다시 의장석에 오른 朴의장은 "지금의 분위기로 봐서 비준안 표결은 불가능하다고 보여진다"며 상정한 지 10분 만에 표결 유보를 선언했다.

朴의장은 이후 기자들과 만나 "연내에 처리하지 못해 안타깝다"며 "내년 1월 7, 8일 본회의에서는 꼭 처리할 수 있도록 각 당 총무들과 계속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농촌 출신 의원들이 "세계무역기구(WTO)의 농업 협상이 끝날 때까지 비준을 연기해야 한다"며 결사 저지를 천명하고 있어 난항이 예상된다.

반대파 의원들은 이날 각 당 의원총회에서도 비준안 연기를 한 목소리로 외쳤다. 한나라당 박희태 전 대표는 "먼저 성난 농민단체부터 설득해야 한다"며 '선(先)설득, 후(後)처리'를 주장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도 "외교 당국의 무지와 한 건 주의의 산물"이라고 맹비난했다. 열린우리당은 찬성 당론을 정하고 무기명 비밀투표를 주장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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