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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핵과 친핵(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핵물질 플루토늄 1.7t을 싣고 지난해 11월 프랑스의 셰르부르항을 떠났던 일본의 수송선 아카쓰키호가 5일 일본에 도착했다. 세계 각국의 거센 반발로 정상 항로를 벗어나 지구를 반바퀴나 돌고 돌아 들여온 이 플루토늄은 일본에서도 반핵단체들의 입항반대 시위에 부닥쳐 곤혹을 치렀다.
인류역사상 유일한 핵피폭국인 일본은 「핵」소리만 들어도 질겁을 하던 나라였다. 그 일본이 경제대국이 되면서 핵알레르기를 극복하고 원자력강국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원폭의 재료인 플루토늄을 외국에서 반입,차곡차곡 비축하고 있는 것이다.
플루토늄이란 어떤 물질이길래 이토록 세계의 여론이 들끓고 있는가. 한마디로 플루토늄은 자연속에는 없는 인공원소로 원자번호는 94번. 천왕성(Uranus)에서 이름을 따온 원자번호 92의 우라늄과 해왕성(Neptune)에서 따온 원자번호 93의 넵투늄에 이어 명왕성(Pluto)의 이름을 빌려 명명되었다.
핵연료로 쓰이는 것은 플루토늄 239로 우라늄보다 농축과정이 수월하고 연쇄반응 폭발력도 강하다. 예를 들어 핵탄두 한개를 만드는데 93% 농축우라늄은 17㎏이나 들지만 플루토늄은 4㎏정도면 된다. 플루토늄을 원자력발전에 이용하려는 것도 바로 그같은 경제성과 효율성 때문이다. 그러나 은백색 금속인 이 플루토늄을 인체에 쏘이면 백혈병·폐암을 일으키게하는 맹독성을 지니고 있다. 이 플루토늄을 일본은 앞으로 29t 더 들여오겠다고 밝혔다.
일본이 이같은 위험부담이 높은 핵물질 플루토늄의 대량비축을 서두르는 것은 잇단 석유쇼크를 겪은뒤 새로운 에너지정책으로 원전을 선택한데 있다. 그래서 대규모의 핵폐기물 처리장을 건설한데 이어 「꿈의 원자로」라고 불리는 고속증식로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비싼 플루토늄을 사용하는 원자로는 우라늄이 부족해질 것을 예상해 고안된 것인데 최근들어 우라늄은 남아도는 실정이다. 냉전종식으로 무기제조에 쓰이던 우라늄의 수요가 줄어들었는데다가 핵무기의 감축으로 기존 핵탄두의 우라늄마저 연료로 전환될 전망도 밝다. 이런 시점에서 일본이 플루토늄을 계속 비축하는 것을 보고 세계가 핵군사대국을 꿈꾸고 있지 않나 하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것은 당연하다.<손기상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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