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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득점 낙방 양산 문제있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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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서울대학교의 입시결과를 보면서 입시생이나 학부모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무슨 시험이 이러냐는 개탄이 저절로 나온다. 3백점(평균 88.2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받고도 떨어진 학생수가 3천3백여명,3백10점(평균 91점) 이상의 탈락자가 2천3백여명,여기에 3백20점(평균 94점)이상의 고득점 탈락자 4백75명이라는 숫자에 이르면 안타까움을 넘어서 울화가 치민다.
인문계 경우 최고­최저간 점수차가 31점이라면 좁은 점수대에서 실력보다는 실수에 따라 붙고 떨어졌다는 소리가 나올만 하다. 학교측이 밝히지 않아서 아직은 짐작이지만 고득점 동점자도 무척 많았을 것이다. 지난해 2백80여명이었다면 올해는 4백명 이상으로 추산할 수 있다. 동점이라도 내신등급이나 1,2지망 순위에 따라 당락이 정해진다지만 고득점자일수록 내신성적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니 결국은 생년월일에 따라 합격여부가 좌우되는 기막힌 일도 많았을 것이다.
이 대목에 이르면 분노마저 치솟는다. 어째서 며칠 일찍 태어난 것이 죄가 되어 낙방의 고배를 마셔야 하는지 낙방생으로서는 부모를 원망할 길밖에 없다. 이런 우수인재들이 승복할 수 없는 이유로 패배의 쓴잔을 마시게되면 다시 회복할 수 없는 깊은 좌절감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이것이 곧 국력의 손실이 아닌가. 우수 인력을 키우는 교육적 효과와도 맞질 않는다.
지난해부터 문제가 쉬워진다 했더니 올해 들어서는 특히 상위권 대학의 고득점자간 변별력이 크게 상실되어 이젠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사정이 여기에 이르렀는데도 출제를 관장하는 교육 당국은 출제가 잘못되었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학교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쉽게 내는 것도 정도문제지 공부 잘하는 학생들에게 불이익을 주고 요행과 실수로 좌우되는 선별의 관문을 통과하게 한 것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된 일이다.
만약 교육당국이 이번의 문제점을 올바르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남은 후기대학 시험에서나 내년의 새 대입제도에서도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수학능력시험은 그냥 있으나마나한 시험이 될 것이고 모두가 대학별 고사에만 정신을 쏟는 파행적 교육이 되어버릴 것이다.
어떤 형태의 교육체계에서든 시험문제는 시험다워야 한다. 상위권과 중하위권을 실력에 따라 가르는 변별력이 있어야 하고 상위권은 상위권대로의 우열을 가릴 판단기준이 명확해야 시험의 본래 기능을 다하는 것이다. 동점자간에는 연령보다는 전공에 따른 가중치를 적용하는게 합리적이다. 이번 출제가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고 아픈 교훈으로 받아들여야만 새 제도의 도입에 따른 여러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기에 우리는 이 문제를 거듭 강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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