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핵 감축과 한반도 핵(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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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성의 시대는 다가 오는가. 흔히 인간은 「이성적 동물」로 정의돼 왔다. 실제로 르네상스 이후 인간의 이성은 꽃피기 시작하여 19세기에 그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세계대전과 전체주의·핵무기가 등장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음으로써 이성의 시대는 영원히 사라진 것이 아닌가 하는 비관론이 풍미했다.
그러나 최근들어 핵대국들이 대화와 협상에 의해 스스로 핵을 포기함으로써 인류의 공멸을 위협하던 핵전쟁의 위험성은 극적으로 감소되고 있다. 이는 히틀러·스탈린 등 반이성적 인격에 의해 유린되어온 인간이성에 대한 신뢰의 회복이라고 볼 수 있다.
3일 미국의 부시대통령과 러시아의 옐친대통령은 모스크바에서 제2단계 전략무기감축협정에 조인하여 인류를 핵공포로부터 해방시키는데 또 하나의 거대한 진전을 이룩했다. 이번 미·러 양대 핵강의 전략핵 감축조치는 양국이 보유중인 핵탄두 약 1만개의 3분의 2를 10년이내에 폐기토록 되어있다. 특히 무차별 대량 살상무기인 지상발사 다탄두핵미사일은 완전히 폐기된다.
제3의 핵대국인 우크라이나도 미·러 핵감축조치를 전폭 지지하면서 자국보유 핵무기를 적극적으로 폐기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옐친의 표현처럼 이런 사태진전은 「모든 인류를 위한 공동의 신년선물」이다.
분명히 지금 세계는 전반적으로 냉전체제의 해체와 함께 군비축소의 방향으로 힘차게 달리고 있다. 핵확산금지도 더욱 진전돼 나가고 있다. 그것은 전쟁을 없애고 영원한 평화가 정착되기를 희구해온 인류의 오랜 소망에 밝은 희망을 던져준다.
그러나 불행히도 한반도는 그 예외지대가 되어있다. 북한은 아직도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지 않은채 남북간에 합의된 「핵시설 상호사찰」에 불응하고 있다. 그 때문에 모처럼 큰 진전을 보았던 남북대화가 다시 좌초되는 계기가 됐고 역사적인 문서로 칭송되어온 남북합의문서들이 휴면상태에 들어가 있다.
김일성은 신년사에서 주체사상과 연방제 통일론을 반복하면서 전군의 간부화와 현대화,전인민 무장화,전국토 요새화 등 이른바 4대군사노선을 다시 외쳐댔다. 전체 동포나 북한 주민들에게 희망과 기쁨 대신 긴장과 고통을 안겨주는 말들이다. 이 얼마나 답답하고 몽매한 망상인가.
올해는 한국과 미국에서 정부가 바뀐다. 한중관계도 더욱 발전될 전망이다. 이때야말로 북한이 잘못된 노선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 방향은 세계 조류에 따라 내부개혁을 통해 발전을 시도하고 대외개방을 통해 세계와의 공존을 지향하며 군비축소를 통해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어야 한다. 핵개발 포기가 물론 그 가장 우선돼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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