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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알리는 믿음의 상징|「닭의 해」세시수상|권두환<서울대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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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계유년 원단의 동이 트고 있다. 새해의 신 새벽을 알리는 닭의 울음소리가 어느 때보다도 힘차게 들린다. 온 누리에 새로운 기운이 가득하고 이 신비한 아침을 맞는 우리들의 마음 또한 새 희망에 벅차 오른다.
금년의 신한국 건설을 약속한 새 지도자가 국정을 맡는 첫해이기에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30년만에 이른바 문민정치가 펼쳐지는 첫해인 것이다. 따라서 새해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다. 과거의 잘못된 관행과 부도덕을 청산함으로써 사회기강을 바로잡아야 한다. 수렁에 빠진 경제를 되살림으로써 누구나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는 바탕도 마련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믿음을 회복해야 한다. 이 사회에 뿌리깊게 자리잡은 불신의 벽을 허물지 못한다면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다. 정부가 국민에게 믿음을 얻지 못하고, 사용자·노동자가 서로 불신과 반목을 일삼는 현실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깨뜨려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새해의 상징인 닭이 무엇보다 신의를 중히 여기는 동물이라는 사실은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들에게 큰 교훈을 주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일찍부터 닭이 다섯 가지 덕을 지니고 있는 가축이라고 칭송해 왔다. 머리에는 벼슬을 이고 있으니 문이요, 발에는 며느리발톱을 달고 있으니 무요, 싸울 때는 분전하여 감투정신을 보여주니 용이요, 먹이를 보면 서로 불러 함께 먹으니 인이요, 밤을 새워 날이 밝으면 때를 알리니 신을 갖추었다는 것이다.
닭의 오덕 가운데 문무를 겸 전했다는 찬사는 그 외형상의 특징을 말한 것이다. 투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싸울 때는 용감하다고 한 찬사 역시 일반적인 닭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따라서 이 아침에 마음가짐을 새롭게 다지는 우리가 배워야 할 닭의 덕목은 인과 신이라 할 수 있다.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닭의 이미지는 어김없이 새벽을 알려준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닭은 이 세상에서 가장 정확하게 동틀 무렵에 맞추어 우는 것으로 유명하다. 스페인의 문호 세르반테스는 닭을 시도 때도 없이 우는 자유주의자라 했고, 중국 문헌 『명도잡지』에는 중국 닭들은 날씨가 몹시 추우면 해가 산허리에 떠올라도 울지 않다가 달이 매우 밝은 밤이면 새벽으로 착각하여 울어댄다고 했으니 우리 토종닭이 얼마나 믿음직한 시계 구실을 하고 있었는지를 짐작할 만하다.
닭의 어질고 인자한 모습은 먹이를 다투지 않는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그들은 결코 우리 인간처럼 독식하려 하지 않는다. 하늘이 주는 먹이든, 주인이 때맞추어 주는 먹이든 어미 닭은 병아리들의 주위를 돌면서 느긋하고 병아리 또한 동요가 노래하고 있는 것처럼 「물 한 모금 먹고 하늘 한 번 쳐다 보고」하는 식으로 태연자약하다. 탐욕스런 동물의 본능은 눈을 씻고 찾아보려 해도 찾기 어렵고, 눈앞의 이익에 전혀 조급하지 않는 의젓한 자태는 우리 인간들에게 무언의 교훈을 주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닭은 그야말로 살신성인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지닌 모든 것을 아낌없이 인간에게 바친다. 애써 낳은 알이 아깝지 않을 리 없건만 매일같이 인간의 반찬거리나 간식이 되어 준다.
우리네 살림살이가 어려울 때 닭은 또한 그의 전신을 투척해 손님을 접대하는 가장 값진 음식이 되어 주었다. 흔히 사위가 오면 닭을 잡는다고 할 정도로 닭은 맛있고 영양가 있는 먹거리였으며, 또한 인간의 기를 보 하는 약용으로도 쓰였다. 맛으로나 약용으로나 우리 토종닭은 널리 소문이 나 있었다. 중국 문헌인 『본초강목』등에 약으로 쓰는 닭으로 조선 닭보다 나은 것이 없으며, 살이 많고 맛이 좋기로는 조선 땅 평택에서 나는 닭이 으뜸이라고 했다.
이와 같이 살아서나 죽어서나 인과 신을 다하는 닭의 일생은 우리 인간에게 큰 가르침을 베풀고 있다. 불신과 부도덕이 미 만한 이 사회를 바로 잡아가는 일은 이러한 닭의 미덕을 본받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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