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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복 남측대표가 본 새 시대 맞은 남북관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핵사찰 등 북 자세전환이 “관건”/한·미 신정부 기존정책 큰 변화없어/남측이 조건 붙여 대화주도 가능성
93년의 남북대화전망에 대해서는 낙관론과 비관론이 교차하고 있다.
이와 관련,이동복 남북고위급회담 남측대표는 28일 서울신문사 정경문화연구소가 「새시대 상황에서의 남북관계」란 주제로 개최한 토론회에서 「남북대화­93년의 전망」이란 주제발표를 통해 지나친 낙관적 전망에 제동을 걸고 있다.
다음은 주제발표의 요지.
「고위급회담」의 형태로 지난 2년간에 걸쳐 진행돼온 남북대화는 일단 그 역할을 다하고 또 하나의 막을 내리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고위급회담이 93년 팀스피리트훈련이 완전히 끝나는 내년 4월말 이후에 속개될 것으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내년 4월말께 되면 남쪽에서는 신정부가 들어서고 미국에서도 클린턴대통령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뒤가 될 것이기 때문에 북한도 고위급회담을 속개하는데 동의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같은 견해는 북한이 당면하고 있는 내외정세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결국 개방과 개혁의 길을 선택하리라는 가정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된다.
현재 북한은 당면하고 있는 난국타개 방안으로 남북관계를 어떤 형태로든 개선하고 개혁·개방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권력구조 내부에 잠재적으로는 매우 심한 갈등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 사실인 듯하다.
문제는 북한내부에 보­혁 또는 강­온간의 갈등구조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것이 수평적이 이니라 수직적이라는데 있다.
말할 것도 없이 북한 권력구조에서 「정책결정권」을 보유하는 「상부구조」는 김일성과 김정일을 정점으로 하는 노동당이다.
그런데 상부구조를 형성하는 이들은 체제안보의 측면을 중요시하는 나머지 「개혁」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신축성을 보이더라도 「개방」에 대해서는 극도로 부정적이다.
이들은 『창문을 열어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게 하는 것은 좋으나 파리와 모기가 들어와서는 안된다』는 이율배반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이같은 수직적 갈등구조아래서는 남북대화가 진행되더라도 그 성과는 기대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고위급회담의 속개시기를 한미 양국의 신정부 성립시기와 연관시키는 것도 객관적으로는 타당성에 문제가 없지 않다.
서울과 워싱턴에 새정부가 들어선다 해도 북한의 내외환경에 긍정적인 변화가 예상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 클린턴행정부의 대북한정책은 임기초반 「부시」행정부 기존정책의 지속성 테두리안에서 핵문제를 포함한 「대량학살무기」확산금지와 인권문제 등을 중심으로 오히려 경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일본의 경우 국교정상화의 절대적인 조건으로 핵문제 해결을 더욱 강조하는 입장이며,EC 또한 『핵문제 해결이 전제되지 않는 한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응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북한에 공식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에 등장하는 새정부 역시 임기초의 상당기간은 남북관계보다는 정치와 경제 및 사회안정 등 국내 문제와 미국의 민주당정권 등장에 따라 새로운 한미관계의 기조를 조율하는 일에 더 몰두해야 할 것임에 틀림없다.
새정부는 아마도 실속없는 「대화를 위한 대화」에 연연하기보다는 역으로 핵문제·이산가족문제·북의 대남혁명노선 등에 관한 남측의 입장을 오히려 「조건화」함으로써 북의 조건이 아니라 남의 조건에 의거해 대화를 주도하는 등 의연한 자세로 대화에 임하라는 여론의 압력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아마도 앞으로는 북이 원하면 회담을 하고 북이 원치 않으면 회담을 하지 못하는 수동적인 회담운용방식은 더이상 용납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결국 고위급회담 중단이후 남북대화의 재개시기 문제는 핵문제를 비롯한 몇가지 현안들에 관해 북측의 새로운 입장정리가 어떻게 될 것이냐에 크게 좌우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경우에 따라서는 12월의 제9차 고위급회담의 유산으로 초래되는 대화의 막간은 내년 4월보다는 그 이후까지 장기화될 수도 있으며,또 대화가 다시 이어질 때는 반드시 그동안 진행됐던 고위급회담이 물리적으로 속개되는 형태로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정리=박의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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