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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체 경제에 활력소” 기대/시장통합을 보는 현지 주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생활에 큰 변화… “경쟁은 더 치열”
단일시장의 출범과 마스트리히트조약의 발효는 유럽인들의 실생활에도 중대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그 변화에는 음주운전 단속기준이 통일되는 것과 같은 사소한 변화도 있지만 모두가 한가지 돈을 쓰는 혁명적 변화도 있다. 개인에서 가게나 기업,크게는 나라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하나 이러한 변화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21세기 유럽합중국으로 가는 역사적 길목에 선 오늘의 유럽인들은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어떻게 대비하고 있을까.
필립 뱅상씨(47). 파리근교에 있는 한 중소기업 사장인 그는 공업용 포장재를 만들어 프랑스기업에 납품하고 외국에 수출도 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 사업상 달라질 것들을 챙겨보고 수지를 따져보며 분주한 일과를 보내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5㎜로 통일돼 있는 공업용 골판지 두께가 독일에서는 7㎜,이탈리아에서는 4㎜ 등으로 각각 다르기 때문에 그동안 외국에서 주문이 있으면 그때마다 기계의 금형을 새로 맞춰야 했다. 이 작업이 힘들고 비용이 많이 들어 소량주문은 취급할 수 없었다. 그러나 단일시장 출범과 함께 공업용포장재 규격도 EC전체가 5㎜로 통일돼 그는 기대를 걸고 있다.
운송비용이나 시간도 전보다 적게 들 것같아 그로서는 반가운 일이 되고 있다. 상품의 이동에 더이상 국경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건을 실은 트럭이 프랑스에서 독일이나 이탈리아·벨기에 등으로 가려면 지금까지는 세관검사를 거쳐야 했다. 여기에 필요한 서류를 미리 준비하는 것도 일거리지만 트럭이 밀릴 때면 몇시간씩 기다리는 것도 큰 문제였다. 그러나 내년부터 무사통과되기 때문에 운송비용이 절감될 수 있을 전망이다. 건당 4백20프랑(약 6만원)씩 내던 통관서류비도 없어진다. 통관서류를 전담하는 직원이 한명 있었지만 앞으로는 필요없게 돼 그만큼 인건비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뱅상씨는 기대하고 있다.
『사소한 것까지 다하면 회사전체로 20여가지가 달라지게 된다. 어떻게 하면 이를 가장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을까가 문제다.』 뱅상씨는 시장단일화로 전반적 경영여건이 나아질 것으로 보지만 자기만 유리해지는게 아닌데다 경쟁은 오히려 전보다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여 불안한 구석도 없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포르투갈사람으로 3년전 택시운전사로 취업,가족과 함께 프랑스로 건너와 살고 있는 바라가씨(36)는 내년부터 좀더 마음놓고 살 수 있게 됐다면서 자기같은 유럽내 후진국 사람으로서는 EC통합은 아주 잘된 일이라고 반가워한다. 『지금까지도 프랑스에 체류하는데 사실 큰 어려움은 없었다. 1년에 한번씩 체류증을 경신해야 하는 것은 다른 외국인들과 마찬가지지만 같은 EC사람이라고 사실상 자동 경신해주는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것조차 필요없게 된다.
파리 10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는 루디니양(21)은 내년봄학기는 이탈리아 볼로냐대학에서 다닐 계획이다. 아버지가 이탈리아계라 이탈리어에 아무 불편을 못느끼는 그녀는 아버지의 고향에 가서 한학기 정도 듣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내년부터 EC내 대학간에는 특별한 심사없이도 서로 학점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수업료가 전혀 없는 프랑스대학에 몰리는 유럽 학생들이 많아져 가뜩이나 비좁은 대학이 더욱 복잡해질까 걱정하는 학생들도 있다고 루디니양은 전해준다.
『유럽통합에 따른 모든 변화가 다 긍정적이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 변화중에는 국가운영에 직결되는 중요한 것들도 있다. 사람들이 별 생각없이 변화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려는 것같아 개인적으로 불만이다.』 프랑스의 보수우파정당인 공화연합(RPR)당원인 드피씨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그러나 유럽통합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유럽통합은 하나의 거대한 물결이며 아무도 이 물결을 비켜갈수는 없다. 유럽사람이면 싫든 좋든 이 물결을 맞이해야 하고 또 대비해야 한다. 일말의 불안과 기대가 교차하는 가운데 유럽인들은 93년 새해를 맞고 있는 것이다.<파리=배명복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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