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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향배·정치파장에 촉각/「도청」수사 한발 물러선 검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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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수사 형평성 잃었다” 야 반발에 주춤/김 전 장관 등과 「진도」 맞추기에 고심
「부산기관장모임」 사건과 관련,김기춘 전 법무장관 등의 조사와는 별도로 도청경위 수사를 서두르고 나섰던 검찰이 22일밤 도청장치를 설치하고 대화내용 녹음테이프를 국민당측에 넘겨준 사건의 핵심인물들을 일단 귀가시킴으로써 강경수사방침에서 한발짝 물러선 인상을 주고 있다. 검찰은 김영삼대통령당선자가 당선회견을 통해 『도청경위가 가려져야 한다』는 뜻을 밝힌 직후부터 도청사건 본격수사에 나서 19일 일본으로 출국한 현대중공업 안충승부사장과 22일 검찰소환에 불응한 정몽준의원 등 2명의 관련여부 조사를 제외하고 나머지 관련자들의 ▲도청모의 ▲실행 ▲녹음테이프전달 등 사실조사와 증거확보를 마쳐 진상규명 차원을 넘어선 강제수사,즉 구속방침의 외견을 보여왔다.
검찰은 긴급구속시한인 연행 48시간이 다가오자 이들에 대한 사법처리를 결정키 위해 22일 오후 5시30분부터 도청사건을 맡은 3차장검사와 기관장모임사건을 수사해온 1차장검사 등 두사건 수사간부와 실무자가 서울지검 검사장실에 모여 1시간40여분에 걸친 숙고끝에 도청사건 관련자들을 일단 귀가시키고 계속 수사키로 결론지었다.
검찰이 이같은 결론을 내린 것은 실정법상 서신이나 전화 등 전기통신도청이 아닌 도청행위에 대해 「똑 떨어지는」 처벌법규가 마땅치 않다는 점 등 사법적 고려는 물론 김기춘 전 장관 등 기관장모임 참석자들에 대한 수사와 「진도」를 맞춰야 한다는 수사외적 고려도 함께 작용했으리란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기관장모임 사건의 경우 23일 현재 피고발인 조사를 거쳐 24일 부산초원복국집에 대한 현장검증을 벌일 계획이며 조사절차를 끝낸후 「법률적 검토」에 따라 관련자들을 처리하면서 여론의 향배와 정치적 파장을 가늠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검찰이 도청사건의 조속한 마무리가 오히려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는 경우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같은 분석은 검찰이 도청사건 관련자들의 신원이 밝혀지기 이전부터 공안부 및 특수부 검사들을 동원,도청관련자들에 대한 ▲대통령선거법 ▲형법 ▲신용조사업법 ▲전파법 등 관계법규를 광범위하게 검토해왔고 긴급구속에 해당하는 48시간 연행수사를 벌여왔으면서도 야당측의 수사형평성문제가 지적되자 『도청사건 관련자들은 입건된 상태가 아니다』고 밝히며 주춤하는 인상을 보인데 기인한다.
검찰은 도청사건 법률검토단계에서 비밀침해죄의 경우 처벌대상이 직무수행중 비밀을 알게된 의사·변호사 등에 적용된다는 이유로,신용조사업법의 경우 이들의 행위가 계속성이 없어 업으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해당법규에서 제외시켰고 기관장모임 제보가 직무상 기밀을 누설한 경우로 보기 어렵고 자금수수관계가 특정되지 않아 제3자를 통한 뇌물요구나 수수에 해당한다고 보기에도 난점이 있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이들이 사용한 녹음장치가 고출력무선기로 밝혀지면 체신부장관의 허가없이 10㎑이상의 무선기를 사용한 혐의로 전파법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으나 이들이 단순한 FM송·수신기를 사용한 것으로 밝혀져 결국 현행법상으로는 이들 행위가 주인의 동의없이 주거를 침입,불법행위를 하고 이 죄를 지은 범인을 은닉한 경우에 해당한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검찰은 주거침입죄를 적용할 경우 『도둑을 잡으려고 옆집 담장을 넘으면 주거침입이냐』는 야당측의 반발과 사건파장에 비추어 죄명이 「격」에 맞지 않는 『궁색한 법적용』이라는 지적이 예상돼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풀이된다.
검찰은 또 도청행위를 특정후보를 비방할 목적으로 선거법에 규정되지 않은 이외의 방법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규정,불법선거운동 한계를 폭넓게 해석해 선거법을 적용할 경우 김 전 장관 등 모임참석자들의 불법선거운동혐의를 밝혀내지 못하면 「고무줄 잣대」라는 비난을 살 수 있다는 고려에서 수사체계조율의 필요성을 느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검찰은 그러나 이 사건 처리에 있어 건영사건 수사개시여부 논란 당시 『범죄혐의가 있어야 수사에 나선다』는 원칙을 되풀이하며 뜸을 들여온 것과는 달리 법률검토도 마치지 않은 상태에서 「3년이상의 징역,또는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저질렀다는 상당한 이유가 있을때」 가능한 48시간 연행조사를 「감행」하고도 입건조차 하지 못함으로써 눈치보기 수사를 벌였거나 무리한 수사를 벌였다는 흠집을 남겼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권영민기자>
□「부산모임」 사건일지
12월5일:김남석씨가 문종렬씨에게 「기관장」 모임 정보 제공
8일 오전:도청장비 구입
8일 오후3시:문씨,안종윤씨 초원복집 내부구조 확인
9일 오전9시:문씨,국민당 부산시지부에 보고하고 도청승낙받음
9일 오후3시:문씨,초원복집 예약
10일 낮12시∼오후2시:문씨 등이 초원복집에 도청장비설치
11일 오전7∼9시:도청
11일 오전9시30분:녹음기 회수
11일 오후11시40분:안씨 등 호텔롯데에서 정몽준의원 만나 1 백억원 요구
13일 오전:안종윤씨 도청장비 회수
15일:국민당,기관장회식사건 폭로
16일:검찰수사 착수 고발인 조사
21일:김기춘 전 장관 등 4명 소환조사,도청사건관련자 연행
22일:박남수부산상의회장 등 3명 소환조사
23일:도청사건 관련자 불구속수사 방침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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