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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스포츠 말말말] 코엘류 "나도 정말 이기고 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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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계미년이 저물어간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스포츠계로서도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한 해였다. 국가적 행사로는 대구 유니버시아드가 있었다. 축구에서는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이 새로 부임했지만 현재까지의 평가는 '기대 이하'로 나타났다.

프로야구에서는 이승엽의 홈런 신기록 레이스가 세간의 화제였고, 골프에서는 '성대결'이 관심사였다. 농구에서는 심판 판정을 둘러싸고 초유의 경기 중단 사태가 빚어졌다. 올해 스포츠계를 '말말말'을 중심으로 정리한다.[편집자]

◇골프=올해의 화두는 '성(性)대결'이었다. 5월 '골프 여제' 아니카 소렌스탐이 미국프로골프협회(PGA) 투어 콜로니얼 대회의 출전을 결정하자 비제이 싱(피지)이 "소렌스탐과 같은 조에 편성되느니 차라리 기권하고 말겠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소렌스탐은 결국 컷오프된 뒤 닭똥 같은 눈물을 떨어뜨리며 "여기까지 온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면서도 "다시는 남자대회에 출전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반면 지난 11월 SBS 최강전에서 남자들과 겨뤄 컷오프를 통과한 박세리는 "PGA 대회에도 도전하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 미셸 위 "캐디인 아빠 신통찮아"

재미동포 '골프 천재' 미셸 위는 3월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 공동 9위에 오른 뒤 "캐디(아버지)가 신통치 않아 좋은 성적을 못 냈다. 해고해야겠다"고 말했고, 10월 제주 CJ나인브릿지 클래식에 출전키 위해 입국하면서 "'빠따(퍼터)'가 안돼 좋은 성적을 못 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야구=올해 한국 야구는 '이승엽의 해'였다. 이승엽은 6월 25일 개인통산 3백호 홈런을 때린 뒤 한 시즌 최다홈런 아시아신기록에 도전했다. 이 과정에서 종전 기록(55개) 보유자인 일본의 오 사다하루(왕정치.다이에 호크스)감독은 중앙일보 지면을 통해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라"라는 명언을 남겼고, 이승엽이 한동안 홈런 가뭄에 시달리자 부인 이송정씨는 초조했던 나머지 "오빠, 밀어쳐"라고 훈수를 했다.

*** 이송정씨 "승엽오빠 밀어쳐"

이승엽의 56호 홈런 신기록의 희생양이 된 롯데 이정민 투수는 "다음에 만나면 삼진으로 잡겠다"고 했고, 홈런 공을 주운 여현태.장성일씨는 "공을 팔아 돈을 벌기보다는 이승엽 선수가 형님이라고 불러주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이승엽은 메이저리그 진출이 좌절된 이후 일본 롯데행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눈물을 펑펑 쏟으며 "회견장까지 올라오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지막 결정을 내렸다"며 "2년 뒤 내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드리겠다"고 말했다.

◇축구=올해 초 축구협회는 움베르투 코엘류 전 포르투갈 대표팀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임명했다. 코엘류 감독은 2월 3일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하면서 "볼이 있으면 빼앗아야 하고, 볼을 잡으면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는 독특한 축구철학을 밝혔다.

한국 코치진과의 상견례에서는 "이제부터 나를 움베르투라고 불러달라. 나도 여러분들을 성화.강희.영수라고 부르겠다"며 '격식 파괴'를 주문했다. 그러나 3월 29일 콜롬비아와의 첫 친선경기(0-0) 이후 일본.우루과이.아르헨티나와의 평가전에서 잇따라 패하자 코엘류에 대한 기대는 점차 실망으로 바뀌어갔고, 급기야 10월 아시안컵 예선에서 베트남.오만에 연패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조중연 축구협회 전무는 "전쟁에서 패하면 장수가 책임져야 한다"며 감독 경질을 시사했다가 여론에 밀려 유야무야 넘어갔다. 유럽파.일본파를 총동원한 11월 18일 불가리아전에서도 0-1로 패하자 코엘류 감독은 "나도 정말 이기고 싶다"며 타는 속내를 털어놨다.

◇농구=프로농구 2003 챔피언 결정전에서 오리온스를 누르고 우승한 TG 삼보 선수단은 4월 15일 이용태(72)TG 삼보 컴퓨터그룹 회장을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이회장은 현역 최고령인 허재(38)에게 '무소불성(無所不成)'이라는 휘호를 선물한 후 "허군이 지금 나이가 몇이지"라고 묻고 "서른여덟입니다"라는 대답에 "이 사람아, 난 지금 일흔둘이야. 서른여덟이면 한창 땐데 무슨 나이가 많다는 거야"라며 현장에서 더 뛸 것을 요구했다.

12월 20일 안양에서 벌어진 경기 중단 사태는 연말 프로농구계를 뒤흔들었다. 한국농구연맹(KBL) 김영기 총재는 21일 "프로 스포츠에서 어떤 경우든 경기 포기란 있을 수 없다. 팬들이 지켜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스폰서를 비롯한 각종 기업과 단체가 관련돼 있다"며 SBS 단장과 코치에게는 자격정지, 구단에는 벌금 1억원의 중징계를 내렸다. 그는 이어 "나도 책임을 지겠다. 업무 인계까지 한달을 넘기지 않겠다"고 사퇴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각팀 단장들로 이뤄진 이사회 간담회에서 근본적인 대책을 모색한다는 합의를 끌어내면서 사태는 수습 국면에 접어들었다.

*** NYT "여성 응원단은 북한 신무기"

◇유니버시아드=부산아시안게임에 이어 두번째로 남한을 찾은 북한의 미녀 응원단은 또다시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북한 조선중앙TV는 "대학생 응원단의 발랄한 모습이 대구 시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보도했으나 뉴욕 타임스는 "북한이 응원단이라는 신무기를 풀어놨다"고 비꼬았다.

대회 기간 '김정일이 죽어야 북한 동포가 산다'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기자회견하던 보수단체를 북한 기자들이 습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북한 선수단이 격노하자 조해녕 대구시장이 사과했으나 북한 측은 "장군님의 권위를 손상한 일인 만큼 사과로 넘어갈 문제인지 두고봐야겠다"며 분을 풀지 않았다. 북한은 다음날 "응원단이 희롱을 당했다"며 철수를 시사했고 이창동 문화부 장관이 재차 사과해 사태를 무마했다. 북한 응원단은 거리에 걸린 환영 플래카드에 김정일 위원장의 사진이 실린 것을 보고 "장군님의 사진을 어떻게 비에 젖게 할 수 있는가"라며 눈물을 흘리며 흥분하기도 했다.

◇전국체전=10월 초 전북 전주시 일대에서 열렸던 제84회 전국체전에서는 장애를 뛰어넘은 외팔 투창선수 허희선(22.경성대)의 인간승리와 무리한 체중 감량으로 사망한 레슬링 선수 김종두(17.전북체고)군의 비보가 겹치면서 감동과 슬픔이 엇갈렸다. 세살 때 불의의 사고를 당해 오른 손목 아래가 없는 허선수는 창던지기 일반부에서 은메달을 따냈다.

허선수는 대회 최우수선수상을 받으면서 "장애를 감출수록 남이 모르는 나만의 특기가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10월 12일에는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46㎏급에 출전할 예정이었던 김종두군이 체중감량 후유증으로 숨졌다. 빈소가 마련된 전북대 병원 영안실에서는 사망 사흘 전 김군을 만났던 사촌형 종하(26)씨가 "종두가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도망나왔는데 배불리 먹여주지도 못했다"며 오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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