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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마을 섬아이가 대통령됐네”/김영삼당선자 고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거제도 외포리어민들 밤샘 잔치/“40여년동안 그 고생 하더니…”/징·꽹과리 치며 “와이리 좋노”/“아침에 까치울때 알아봤제” 얘기꽃
『갯마을 소년이 대통령이 됐다.』
19일 새벽 김영삼대통령당선자의 고향인 경남 거제군 장목면 외포리의 작은 어촌 대계(큰닭)마을은 환희의 파도로 출렁거렸다. 개표실황을 지켜보면서 뜬 눈으로 지샌 어촌주민들은 당선이 확정되는 순간 서로 부둥켜 안고 『김영삼대통령 만세』를 외쳤다. 민주화 투쟁을 이끈 정치 지도자의 고향이지만 그의 야당생활 40여년동안 탄압과 수난을 함께 겪어야 했던 이곳 주민들에게는 이날의 영광이 더욱 커다란 감격일 수 밖에 없었다.
18일 밤 12시쯤 김후보가 계속 수위를 달리며 당선이 확실시되자 생가 앞마당의 평상과 안방 등 세군데에서 개표방송을 보고 있던 주민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마당에 모여 『김영삼』『대통령』을 연호했으며,때 맞춰 경로당에 있던 노인과 아주머니들도 징·꽹과리를 치며 생가에 몰려들면서 마을잔치가 시작됐다. 8년간 김 후보의 생가를 관리하며 고기잡이를 해 온 김 후보의 6촌동생 김양수씨(40)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며 흥분한 모습을 감추지 못하면서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김 후보의 생가 옆에서 가게를 하는 김길용씨(47)는 『오늘 아침 김 후보 집 감나무에서 까치 한 쌍이 크게 울어 분명히 당선되는줄 믿었다』고 어쩔줄 몰라했다. 마을 사람들은 『김 후보가 그 고생을 하면서 40년간 민주화투쟁을 해 온 보답을 받은 것』이라며 한결같이 말했다.
『영샘이가 어렸을 때부터 동네 대장이었제. 아이들을 이끌고 미바다먹기(파도타기)를 할때는 해초를 붙들고 오랫동안 물속에서 나오질 않아 죽은 줄 안 알았나.』
이 마을 최고령자인 장수상옹(74)은 김 후보의 어린시절을 주위사람들에게 들려주었다.
『우리는 아무런 바람도 없어예. 우리 마을 김 후보가 대통령이 됐으면 그만입니더. 김 후보도 정치생활하면서 이 마을에 이득준 것 아무것도 없고,우리도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십니더.』
동네 신명교회에서 혼자 기도를 한뒤 뒤늦게 마을잔치에 참여한 한 아주머니의 말은 김 후보가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 끝없이 생각해봐야할 내용이었다.
한편 김 후보의 아버지 김홍조옹(82)은 이날 마산시 회성동 자택에서 오후 7시쯤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가 오후 11시50분쯤 일어나 이웃주민·비서 등 4명과 함께 거실에서 개표를 지켜봤다.
김옹은 김영삼후보가 김대중후보를 앞서나가자 오전중 또 초조했던 것과는 달리 매우 밝은 표정으로 보도진 등과 얘기를 주고 받았고,측근들은 시간이 갈수록 표차가 점점 더 벌어지자 『승부는 끝났다』며 일제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다.<거제·마산=허상천·전영기·오영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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