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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속 개혁」호소 적중 김영삼/14대대선… 승인과 패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정 후보의 대구·경북 잠식 너무 기대 김대중/무차별 현대 동원공세 거부감 자초 정주영
득표결과는 한마디로 김영삼민자당후보에게는 목표초과달성이고 김대중 민주당후보에게는 기대치 미달이다. 정주영 국민당후보는 운동량에 비해 매우 실망스러운 성적을 기록했다.
후보들은 그동안 대입수험생처럼 결전을 준비해왔다. 그들의 승인과 패인은 무엇일까.
김영삼당선자는 여론조사결과보다 약간 앞서 뿌듯한 승리를 낚았다.
김 당선자측은 선거전략에서 두가지 줄기를 잡아왔다. 하나는 안정확보능력(원내과반수론)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병 치료」라는 개혁론이다. 한마디로 「안정속의 강력한 개혁」이다.
결과적으로 국민은 「혼란속의 개혁」쪽을 외면해 우리사회에 안정희구세력과 중산층이 두텁게 형성돼 있음을 반증했다.
「색깔론」제기·정원식 전 총리 영입·여의도유세 취소 등 안정호소책은 일면 진부해보였지만 먹혀들었다고 볼 수 있다.
정권교체가 되려면 서울에서 야당바람이 불어야 하는데 서울의 두터운 중산층이 변화의 바람을 냉담하게 대했음이 개표결과 드러났다. 투표전에는 「정주영」얘기가 많았지만 막상 국정담당자를 결정하는 투표장에선 쑥 들어갔다.
이동통신반대·「상도동 집한채」론·「물정부」공격·내각중립요구 등은 김 당선자의 개혁론과 연결된 것이었다.
『정 후보를 찍으면 김대중후보가 된다』는 3단논법식 홍보논리도 성공적이었다는게 당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덕분에 TK(대구·경북)가 김 후보를 화끈하게 밀어주었다는 것이다.
민자당은 「부산기관장모임 사건」도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고 보고 있다. 선거막판에 이 사건으로 엄청난 역풍이 일어나자 김 당선자에게 미온적이었던 대구·경북 유권자들이 『YS가 위험하다』고 느껴 뭉쳤다는 것이다.
현대의 선거개입을 폭로한 정윤옥양사건은 일종의 행운이었던 셈이다.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받았던 TV토론 사양(?)도 안전판이었다. 관훈토론도 무난히 넘겼다. 지나친 「김대중 색깔론」공격이 득인지 실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안정희구세력의 이탈을 막는데는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김대중후보는 시험공부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마지막 도전에 대비해 일찍부터 「뉴DJ플랜」을 다듬었다. 그러나 결국 계층적·지역적 거부감이란 벽을 넘지 못한 것 같다.
일부에선 어부지리를 취할게 아니라 쟁점정국을 주도했어야 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정 후보가 대구·경북에서 잠식해줄 표에 너무 기대를 건 나머지 현대의 불법적 선거운동에 한눈을 감는 전략을 시종일관 구사한데 대한 유권자의 거부감도 적지 않았다는 비판론이 제기되고 있다.
정 후보가 터무니없는 선거운동과 비방·폭로를 해 스스로 무력해지는 바람에 김대중후보의 잘잡은 선거전략방향도 별 쓸모가 없었다는 지적이다.
「민주대 반민주」라는 쟁점이 약했던 선거환경도 그에게 불리했다. 대도시에서 야당바람이 미약했고 20대 유권자를 큰폭으로 움직일 기폭제도 없었다고 볼 수 있다. 투표율도 87년보다 낮았다. 김 후보는 「젊은 물결」운동에 기대를 걸었으나 87년과는 분위기가 많이 바뀌어 있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전국연합」과의 연대는 「DJ의 실수」라는 민자당의 지적처럼 득보다 실이 많았던 것 같다. 어렵게 구축한 「뉴DJ」로 낚아챌 것이 기대됐던 중산층이 의심을 되살린데다 박찬종·백기완후보의 기대됐던 사퇴도 이루어지지 못해 득표에 별도움이 없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대선패배에도 불구하고 DJ선거운동 자체는 궤도이탈이 별로 없었다.
정 후보는 모험의 실패를 분명히 입증했다. 대기업다운 기동성은 발휘했지만 현대를 동원해 물량공세를 편 것이 결정적 실수였다고 할 수 있다. 국민당과 현대는 관권탄압이라고 몰아붙였지만 현대직원들의 극성스런 선거운동을 체감하고 있던 유권자들은 국민당의 이같은 선거행태에 분명하게 한계를 그었다.
정 후보는 지난 총선때는 현대동원을 딱 잡아뗐다가 이번에는 자발적이라고 강변했고 비자금에 대해서도 처음엔 『주식을 단 한주도 안팔았다』고 했다가 『내돈 내가 쓰는데 웬 말이 많으냐』는 식으로 너무 안하무인격으로 언행을 바꿈으로써 신뢰감을 주는데 실패했다. 정 후보의 비방·폭로전도 도가 지나쳤다는 지적이 많다.
부산사건은 기득권세력의 부도덕성을 부각시켰지만 치밀한 공작의 결과였을 뿐만 아니라 도청이라는 수단을 통해 논란거리가 됐다.
또 3공이래의 공작정치에 깊숙이 간여했던 인물들을 인재영입이라고 끌어들인 것도 유권자들의 정서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정 후보의 출마는 나름대로 의미도 있었다. 양김에 대한 반감을 확인시킨 것이다. 그러나 이를 표로 묶기 위해선 선거운동이 양김보다 도덕적이고 정상적이어야 했다. 박태준 입당설·정치자금 폭로설·한은 3천억원 발권주장같은 근거없는 선전은 그의 표를 깎았다.<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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