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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울고,웃고,부딪치고 … '20대의 6년' 공백 노래속에 녹아있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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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늦은 오후 가수 양파(28·본명 이은진)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바쁜 일정에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한 듯했다. 인터뷰를 잠시 중단하고, 햄버거로 가벼운 요기를 하기로 했다. 맛있게 햄버거를 먹던 그는 눈을 지그시 내리깔더니 속 깊은 얘기를 털어놓듯 입을 열었다. 사실…, 저 요즘 무척 행복해요. 정말 행운아인가 봐요."

6년의 공백을 딛고 양파가 화려하게 컴백했다. 팬들의 긴 기다림에 양파는 더욱 성숙해진 모습과 가창력으로 보답했다. 나온 지 한 달 된 그의 5집 앨범 '더 윈도우스 오브 마이 솔(The Windows of My Soul)' 은 온·오프라인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가히 양파 신드롬이다.

양파는 1996년 모범생 하이틴 스타로 가요계에 등장했다. 애송이의 사랑 아디오 등의 히트곡으로 '발라드의 귀재'로 떠올랐다. 2001년 전성기 때 소속사 문제로 아픔을 겪으며 무대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이제 20대 후반의 성숙한 여인으로 돌아온 것이다. 게다가 들을 만한 음악을 갈구해온 성인층들이 만족해 할 음악을 내놓았다.

6년의 세월이 가져다준 성숙함 때문일까. 그는 음 악에 대한 갈증을 그냥 토해내지 않았다. 더욱 절제되고 유려한 보컬로 리듬을 완전히 장악했다.

-타이틀곡 '사랑…그게 뭔데'가 완전 신파라는 지적이 있다.

"맞다. 신파다. 신파라고 곱지 않게 보는 사람들에게 되레 묻고 싶다. 신파가 나쁜 거냐고. 셰익스피어 때부터 신파는 항상 우리 곁에 있어 왔다. 사랑과 이별의 슬픔을 노골적으로 노래하는 게 신파다. 그래서 신파는 사랑받는다. 다수가 좋아한다는 것은 공감대가 있다는 것 아닌가. 지금, 여기 상황에 가장 어울리는 음악을 하는 게 양파다. 그 음악이 대중에게 사랑받으니 나는 행운아다. 이번 앨범이 신파라고 실망한 팬들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조금만 더 믿고 기다려 달라고."

-과장된 감정을 토해내는 '소몰이 창법'과 댄스곡처럼 방방 뜨는 트로트 사이에서 정통 신파가 자취를 감췄다. 그것을 양파가 되살렸다는 분석도 있다.

"요즘 가수와 비교해 창법과 톤이 많이 다른 건 사실이다. 나는 노래를 잘하는 가수라기보다 나만의 보컬을 표현하는 가수라고 생각한다. 가수의 가슴에서 우러나와 듣는 이의 가슴에 남는 음악이 결국 승리한다."

-양파 신드롬의 배경이 있을까.

"양파라는 가수에게 대중이 투영하고 있는 아날로그 시대의 낭만과 향수가 많이 남아 있다고 본다. 데뷔 때부터 좋아해 줬던 팬들로부터 '순수했던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해 줘서 고맙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소속사의 대대적인 홍보 덕도 있다. 그리고 이번 앨범 곡들은 대중적이다. 철저한 대중성을 의도했다. 예뻐진 외모도 한몫 하지 않았을까? (웃음) 6년간의 공백이 주는 신비감도 작용했을 것이다."

-대중성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부분이 있었을 텐데.

"양파가 뮤지션으로 돌아오길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이번 앨범이 미흡하게 느껴질 수 있다. 솔직히 이번 앨범은 일단 잘 돼야 한다는 마음으로 만들었다. 적응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자신도 없고, 불만도 가득한 채로 음반을 냈다. 그런 앨범이 사랑받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나라고 왜 욕심이 없었겠는가. 6년간 모아둔 내 음악 노트는 실험적인 컨셉트들로 가득 차 있다. 예전의 양파와 비슷한 음악을 갖고 나온다는 게 싫었다. 안면 몰수하고 그냥 뜨기 위해 웃으면서 노래하는 건 체질에 맞지 않는다. 당연히 회사와 의견 충돌이 있었다. 회사는 나의 대중적 가치를 보고 계약했는데, 나는 딴 우물 파려 하고, 노래해 보면 울고, 그러니 회사도 힘들지 않았겠는가. 그래서 작업이 미뤄지고 미뤄져서 2년 만에 앨범이 나왔다. 생각을 고쳐먹고, 욕심을 자제했다. 이번 앨범이 잘 돼야 계속 음악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대중과 타협했다는 말인가.

"어릴 때는 욕심으로 음악을 했다. '나 이런 거 할 줄 알아'하며 과시하는 식이었다. 돌이켜 보면 어린 치기이자 음악적 허영이었다. 이번 앨범을 준비하며 '대중 속의 음악'을 선택했다. '애송이의 사랑' '아디오'는 딱히 좋아하는 노래는 아니지만, 지금도 양파 하면 떠오르는 대표곡이다. 그 곡들이 사랑받았기 때문에 양파가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노래는 세상에 선보이는 순간부터 가수의 것만이 아니다. 예전에는 '이런 대중적인 노래로 사랑받아 뭐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아니다. 양파는 아티스트다, 이런 식으로 포장하고 싶지 않다. 대중성 안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조금씩 선보일 것이다. 6년간 가장 많이 들었던 록, 일렉트로니카를 언젠가 내 식대로 풀어봤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6년의 공백은 어떤 세월이었나.

"데뷔 10년이 넘었지만, 꽉 찬 10년이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5년차 가수라고 생각한다. 누구를 탓하고 싶지 않다. 공백의 가장 큰 원인은 나 자신이다. 그때 좀 더 현명하고 너그럽게 대처할 걸 하는 후회가 든다. 내 안에 불만이 많았다. 자신을 닦달하며, 벼랑 끝으로 몰고 갔다. 그런 마음 때문에 음악 자체를 즐기지 못하고 지쳐 버렸다. 계약 관련 소송까지 겹쳤으니 상황은 최악이었다. 노래를 못하게 되니 화병까지 걸렸다. 얼굴에 열꽃이 오르고 눈이 충혈될 정도였다. 집에 틀어박혀 뭔가에 중독되는 '오타쿠' 생활도 했다. 하지만 음악하는 친구들과 작업을 하고, 공연도 보는 등 음악의 끈을 놓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울고, 웃고, 사랑하고, 삶과 치열하게 부딪친 흔적이 음악에 묻어나야 한다고 깨달았다. 여가수의 절정기인 20대 중반의 목소리를 남기지 못한 게 정말 아쉽다."

-가사가 예전과 달리 상당히 직설적이다.

"요즘 세상이 예전만큼 낭만적이지 않다. 컴퓨터 세대는 낭만이나 은유보다는 빠르고 직설적인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가사를 노골적으로 썼다. 직설적으로, 쉽게 공감할 수 있도록 하자는 뜻이었다. 노래도 창법도 그런 의도에서 접근했다. 구수하고 신파적 느낌이 물씬 나는 창법을 택했다. 좀 더 망가지면서 처절하게 불러보자고 마음먹었다."

-오랜 공백을 거치며 음악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질 것 같다.

"쉬면서 내가 왜 가수를 하려 했을까 자문할 때가 많았다. 나는 노래할 때 가장 기쁘고 행복했다. 가장 처절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도 음악은 항상 친구가 돼 줬다. 음악은 내 삶의 이유다. 예전에는 실패가 두려웠지만, 이제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싱어송라이터로서 걸음마 수준이지만 나만의 색깔을 내는 실험을 계속할 것이다. 여성의 감수성을 대변하는 음악이 좋다. 날 실험대상으로 놓고 내 안에 있는 그 무엇을 끄집어내려고 한다."

글=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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